"노화랑에서 6년만의 전시에요. 3년전 하려다가 미뤄졌었죠."
노화랑에 내건 신작은 내공의 화력이 짱짱하다. 이번엔 한떨기 진달래꽃을 화폭에 불러내왔다. 얇은 나뭇가지와 활짝핀 꽃은 진짜처럼 생생하다. 반면 배경은 낙서를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헝클어진 머리처럼 얽혀있거나 버들가지처럼 늘어진 선들이 그어져있다.
막 그린듯 보이지만 철저한 계산과 기운에 의해 생동한 그림이다.
"드로잉을 먼저 합니다. 붓터치 하나당 최소한 20번씩. 마음에 들때까지 지우고 또 지우고 하지요. 꽃이 슥 지나갔을때 그 기운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이후에 꽃을 그립니다."
작가에게 중요한건 사실 꽃이 아니다. 활짝 핀꽃은 그에게 모양일뿐이다. '공간의 조화'가 우선이다. 그가 자연스럽게 붓질한 흔적, 어떤 기운 같은 에너지가 감긴 드로잉이 주인공이다.
"나는 진달래라는 이미지를 빌려온 것뿐입니다. 앞으로 다른꽃이 마음에 들면 진달래는 버릴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진달래가 좋습니다" 한때 '서정적인 꽃 작가'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꽃 작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나팔꽃을 그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정적으로 갈뻔 했죠. 후회했어요. 제 그림은 구체적인 서정성은 아닙니다. 제 그림은 추상성이 접목된 서정성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추상적 공간인 배경과 현실적 공간이 꽃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생경하고 이질적인 감성을 표현한 작품은 8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다.
그는 꽃 그림을 그리다보니 '동백, 나팔꽃, 진달래'가 가장 성격있고, 여자같다면서 진달래는 고향 누나같은 느낌이지만 진달래가 가장 그리기 어렵다고 했다.
꽃과 선,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간결하지만 여운있는 붓질이 돋보이는 작품은 유명세를 탄 이우화 화백의 바람시리즈가 언뜻 떠올려진다. 작가는 "대가에 비교가 안된다"며 겸손함을 보이다가 "감각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고 껄껄 웃었다.
극사실화(진달래)와 추상(화면을 휘감는 다양한 곡선들)이 공존하는 화면은 이질감보다는 살랑이는 바람같은 신선한 긴장감이 춤춘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실재와 상상, 존재와 환영, 구상과 추상 그리기와 긋기, 느낌과 사유등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는 이번 작품전은 우리를 드넓은 상상의 공간으로 안내한다"며 "박훈성의 작품에서처럼 상상속에서 서로 다르다고 여겨졌거나 상충되었던 것들은 창의적으로 융합되고 나아가 유쾌한 연상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13일부터 펼친 이번 전시는 ‘사이(between)’라는 타이틀로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나뭇가지를 덧대, 실재와 환영을 결합한 소품도 나왔다.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에서 존재하는 간극, 즉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각적 즐거움과 감성적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