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가계, 흔들리는 가정] 대한민국 ‘노인 난민화 진행’ 중

2015-05-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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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계단을 올라가는 중년 남성 [김세구 기자 k39@aju]


아주경제 조현미 기자 = #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명진(가명·75)씨는 부인과 단둘이 산다. 세 자녀를 뒀지만 모두 결혼과 함께 각자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김씨의 유일한 소득은 매달 25일 부부에게 나오는 기초연금 32만4160원뿐이다. 이마저 병원비와 약값, 식재료비 등으로 금세 동난다. 경조사가 있으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탓에 용돈은 생일이나 어버이날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로 꼽힌다. 세계은행(WB)의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현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15~64세 인구가 2010년부터 2040년 사이에 15% 이상 줄어든다.
또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7%에서 14%로 늘어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 노령화 속도는 20년으로 예상했다. 일본의 고령화 속도는 25년, 고령화가 이미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 영국과 미국은 각각 45년, 69년이었다.

의료비 증가율도 거세다. 2000~2009년 우리나라의 1인당 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4.1%보다 2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 국민이 쓴 총 의료비는 2011년 91조2000억원에서 2013년 101조원, 2020년에는 200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비 증가는 노년층이 이끌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전 국민의 12%인 65세 이상 노인이 2014년 한해 동안 쓴 진료비는 총 19조3551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5.5%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10.4%나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75세 이상 후기노인수와 진료비 지출액이 크게 늘었다. 후기노인 인구는 2010년 200만9004명에서 지난해 286만1673명으로 42.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 연령대의 진료비 총액은 5조8153억원에서 9조8814억원으로 69.9% 급증했다.

문제는 한국의 노년층은 병원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OECD 34개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은 2007년 15.1%에서 2010년 12.8%로 2.3%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 기간 44.6%에서 47.2%로 오히려 2.6%포인트 증가했다. OECD 평균보다 4배 가량 높고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자녀의 부모 양육도 기대할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노후 대비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2002년 70.7%에서 지난해엔 31.7%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가족·정부·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자는 18.2%에서 47.3%로 늘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노인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인의 67.5%가 자녀와 따로 살고 있는 노인부부가구(44.5%)나 독거가구(23.0%)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년층 대부분이 부동산 외엔 별다른 자산이 없고, 이마저도 없는 노인이 대다수여서 노인빈곤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취업'에 나서는 55~64세의 경제활동 참가율(2012년 기준) 64.7%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 단절로 발생하는 '노후난민'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후난민이란 고령자가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의식주 등 기본생활을 해나가지 못하거나,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돼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2010년 일본에서 노인의 고립사가 늘면서 처음 제기됐다.

보험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노후난민화 가능성 검토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노후 난민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무적 측면에서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로 감소하는 등 낮은 공적연금 비중과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65세)과 조기퇴직(정년 60세)간 격차로 인한 노후 준비 부족으로 노후빈곤율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높은 독거노인 비율과 노인자살률 등 비재무적 측면에서도 이미 노인의 사회적 고립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노후난민화가 전개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이런 재무적·비재무적 요인의 심각성이 커 일본보다 노후난민의 발생 속도가 빠르고 강도가 심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성호 연구위원은 "노후난민화에 대비해 지금부터 중장년층에 대한 근로·복지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년연장 의무화와 같이 중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 정책을 잘 정착시키는 등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노후난민 우려가 있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발굴해 이들에게 사회적 교류와 건강관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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