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산층·서민 가정이 사교육비 문제로 휘청대고 있다. 교육 현장의 중심이 사교육으로 넘어가면서 학교 중심의 공교육은 점차 붕괴되고 사교육비는 갈수록 증가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지 오래다.
13일 교육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가구당 월평균 가처분 소득은 349만8000원으로 초·중·고생 자녀 1명당 사교육비로 평균 24만2000원을 지출했다. 초·중·고생 자녀 1명당 6.9%의 소득을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자녀가 2명일 경우엔 사교육비 지출이 가처분소득의 13.8%를 차지한다.
사교육비 총 규모는 18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1조4495억달러)의 1%를 웃돈다. 한 나라가 연간 벌어들인 총생산액의 1% 이상을 과외·학원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물론 사교육비를 이보다 훨씬 많이 쓰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대학 서열화에 이어 고교 서열화까지 심화하면서 사교육을 받는 연령은 점차 내려가 유아 시기부터 월 100만원이 넘는 영어유치원 등을 다니는 지경까지 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교 때 경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등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간다.
벤처기업 관련 한 협회에 재직중인 김모씨(49)는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목고등학교 진학을 계획하는 경우 중학교 재학시절 어학연수가 필수코스로 인식이 돼 있다"며 "딸이 중학생 때 1년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데 3000만원 이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사교육비를 대느라 한동안은 양복 한벌 사입는 것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며 "이렇게 해서 애들 좋은 학교 보내면 뭐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교육비의 소득수준별 격차도 커지고 있어 사교육 세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월평균 소득 600만원 미만 모든 소득구간대에서 사교육비는 전년대비 0.5%~7.8% 줄었고 소득 600만원 이상~700만원 미만 가구에서 2.2%, 700만원 이상 가구에서는 3.1% 증가했다.
GDP의 1% 이상의 사교육비로 지출되고 있지만 효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실증적인 연구결과 사교육 효과는 고학년이 될 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저학년일 때는 학업성취도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오히려 혼자 공부하는 경우가 학습 성취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중심의 입시 교육 때문에 학교 현장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교육 붕괴는 가속화 하고 있다.
성남의 한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이모씨(47·여)는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있어도 깨우질 못한다. 애들이 선생(님) 무서운 줄 모른다"며 "아이들 사이에선 수업시간에 자 둬야 학원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교육도 일종의 서열화가 이뤄지고 있어 유명 강사에게 고액 과외를 받는 그룹, 유명 학원에 다니는 그룹,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그룹으로 자연히 그룹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며 "사교육에서도 소외된 학생의 경우 탈선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다양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가계에 대한 부담이 여전한 것은 대학 입시에서의 경쟁을 통한 줄세우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KDI 김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부터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선행학습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학교 교육 과정을 정상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사교육 분야에는 선행광고 등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방안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