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9박12일간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누적된 피로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둘러싼 현안 대처가 줄줄이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 편도선이 붓고 고열과 복통 증세로 거의 매일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강행군을 한 탓에 건강이 많이 악화됐으며, 건강 검진을 한 의료진으로부터 조속한 회복을 위해 최소 하루나 이틀간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받았다고 청와대가 27일 밝혔다.
구체적인 증상은 과로에 의한 만성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과 복통, 인두염에 의한 지속적인 미열 등이다.
박 대통령은 이에 따라 당분간 일정을 잡지 않고 휴식을 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선 최소 하루 이틀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할 것 같고 그래서 2∼3일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귀국 직후 나올 것으로 보였던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사의 수용이 자연스레 미뤄졌고, 이번 파문과 관련한 새로운 메시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됐던 28일 국무회의 주재도 사실상 힘들 전망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방침에는 변함이 없고, 건강이 호전되는 대로 늦더라도 금주 내에는 사표를 수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총리 의혹과 해명과정에서 거짓말 논란이 빚어지면서 대국민 불신을 초래한 부분에 대해선 박 대통령이 총리 임명권자로서 유감을 표명하거나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이 성완종 리스트에 초점을 맞춰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공세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성완종 파문 전체를 놓고 박 대통령의 사과표명이 필요하다는 새누리당내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귀국한 박 대통령을 향해 “국민은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길 원한다”며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내부 기류는 성완종 파문이 △친박 핵심인사들이 포함된 8인 리스트 의혹 △과거 성 전 회장이 대아건설을 키우고 경남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관련 의혹 △성 전 회장의 두번에 걸친 대통령 특사 등 3가지 덩어리로 구성된 만큼 박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해야 할 부분을 가려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메시지 수위나 행보 폭은 4.29 재보선 전후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돌발변수인 박 대통령의 '건강악화'가 오히려 야당의 공세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박 대통령이 휴식을 취하는 하루이틀동안 시간을 벌면서 여론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야당의 공세도 막아낼 전략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야당 내부에서는 만성피로로 몸져누운 박 대통령을 상대로 포화를 날리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완종 파문 이후 치러진 4.29 재보선이 국민의 첫 심판인 만큼 여당이 최소 2곳 이상 승리하게 되면 박 대통령으로서는 ‘성완종 블랙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론 발판을 만든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성완종 파문으로 줄줄이 올스톱 됐던 공공부문 개혁과 경제활성화 등 핵심 국정과제를 추진할 국정동력을 회복하고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