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전운·문지훈 기자 =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놓고 금산분리에 대한 갑론을박이 거세다. 금융기관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산분리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금산분리가 핀테크 활성화를 가로막아 금융시장의 질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부는 일단 금산분리를 기본 원칙으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융산업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규제완화를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산분리는 말 그대로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은행업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하는 원칙을 말한다.
금산분리 원칙 하에서는 기업이 은행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거나, 은행 등 금융회사가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현행법은 4%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세워진 것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경우 기업집단의 관련 계열사가 부실해져도 계열금융회사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에 계속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고, 그로 인한 여러 계열사의 동반 부실화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른 파급효과는 타 금융회사는 물론 제조업, 나아가 경제전반에 미칠 수도 있다. 또 산업자본 계열의 금융회사가 계열기업을 위해 보유자산을 운용함에 따라 지배대주주와 소액주주, 고객간의 이해 상충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핀테크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서도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산분리 원칙은 고유의 역할이 있고 핀테크와는 취지가 다른 만큼 기존 규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산분리 규제가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전성 훼손 등 사금고화, 경제력 집중에 의한 폐해를 방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핀테크 발전은 보안성 및 고객 편의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산분리가 핀테크 활성화 저해
이에 반해 금산분리가 금융과 산업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막고, 은행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끊이지 았았던 금산분리 규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현 금산분리 규제 조항들은 이미 실효성이 없거나 이중규제적 요소가 많아 지나치게 시장성을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기업집단의 지배주주가 금융회사를 개인 금고처럼 이용하거나 금융회사의 자산으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주주를 견제하고,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많은 규정들은 이미 수많은 법령을 통해 규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OECD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금융회사의 소유가 분산되고 기관투자자들이 대주주의 지위를 점함으로써 금융회사 경영에 대한 감독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지적한 것처럼 관리감독의 문제를 소유구조의 규제로 대신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글로벌 마켓과의 경계가 무의미한 인터넷 시대에서는 해외기업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금융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자금력도 부족한 국내의 유통기업이나 ICT기업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ICT기업이 이미 확보한 플랫폼 고객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창출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대규모 자본과 마케팅 전략을 갖춘 대기업의 진출이 제한되어 있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는 여전히 불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도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적극
국내와 유사한 금산분리 규제가 있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규제가 매우 완화돼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업과 증권업의 겸업을 금지하는 글라스-스테갈 법안(Glass-Steagall Act)을 근거로 금융업종 간 상호진출을 엄격히 제한해왔지만 지난 1998년 이 법을 폐지했다. 일본도 1997년 금융산업 위기를 맞은 후 비금융기관이 20% 이상 은행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은행법을 개정한 뒤 산업자본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은행산업 진출이 활발해졌다.
핀테크 이슈를 부각시킨 중국의 경우도 민간금융기관 규제 완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어 알리바바 등과 같은 ICT기업이 은행 라이센스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