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대학 일방통행식 구조조정 인문학 황폐화 초래”

2015-03-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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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진흥 종합방안 마련 심포지엄 개최

아주경제 이한선 기자 = 교육부나 대학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이 인문학의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가 24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한국연구재단 주관으로 개최하는 인문학 진흥 종합 심포지엄에 앞서 배포된 자료집에서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는 “교육부나 대학 당국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인문학과 인문대학의 황폐화 내지 급작스런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변화들이 대학의 발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 속에 교육과정의 변화가 주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활발한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하고 교육부는 이러한 공론의 장을 대학들이 만들도록 장려해 불필요한 갈등과 쟁투로 인한 낭비를 줄이도록 해야 하며 대학 구성원들이 중요한 변화에 무관심으로 돌아서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인문학은 기초학문으로 간주돼야 하며 기초과학과 함께 국가가 전략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가운데 인문대학의 전통이 강하고 건실한 연구 인프라와 대학원 교육프로그램을 가진 대학들이 더욱 강한 인문학 연구자들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며 “학문기반은 한 번 무너지게 되면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인문 연구,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하고 구조조정이 건실한 인문대학과 인문학 연구의 기반을 무너뜨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김 교수의 지적은 교육부가 내년부터 신규 사업으로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중앙대의 경우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면서 진통을 겪는 가운데 인문학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대학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인문학계에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주목된다.

김 교수는 인문대학의 교육과정 개선방안에 대해 인문대학의 변화 방향을 ‘통섭’과 ‘전문화’로 설정하고 통섭적 성격을 반영하는 모델로 인문학 기반 지역학, 문학·역사·철학을 아우르는 통합 전공 등 ‘인문학 기반 연계 전공’을, 전문성 강화 모델로 인지과학, 영상인문학, 디지털인문학 등 여러 전공이 결합해 전문화된 융합전공을 예로 들 예정이다.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기초과학과 함께 국가가 전략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건실한 인문학 연구자들이 클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당부할 계획이다.

류병래 충남대학교 언어학과 교수는 "대학 안에서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거나 계륵으로 방기되고 있는 것은 대학 최고책임자가 유한한 자원을 선택과 집중 원칙으로 투입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에 지원하는 것이 재정지원을 받는 데에 유리하다고 보지 않아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교육 당국의 평가기준 중 취업률과 SCI 게재 실적 등 '연구실적의 정량적 평가'에서 이공계에 밀려 투자 순위에서 밀린 결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인문학 교수가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 거점 국립 A대학교의 경우 전체 교수 배정정원은 2008년 897명, 2014년에는 919명으로 22명이 늘었지만, 인문대학 12개 학과 교수 수는 2008년 91명에서 2014년 77명으로 줄어 불과 6년 사이에 14명의 교수가 사라졌다"며 "인문학 교수의 수를 줄이는 일은 나무로 치면 뿌리를 잘라 버리는 일이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또 "인문대학의 학과가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학령인구감소, 대학구조개혁, 학과 통폐합에서 인문학은 자유롭지 못 할뿐더러 특히 사립대는 인문학과가 통폐합 대상 영순위가 되고 있다"며 "2014학년도 행해진 폐과의 29.9%가 인문계열 학과이고 그 중에서 수도권 대학에서는 없앤 학과 중 인문계열 학과가 38.5%를, 지방대의 경우 24.7%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류 교수는 "지속적인 인적 투자를 해야 하며 대학원생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수도권의 일부 대학으로만 몰리는 것이 현실로 인문학 전공의 대학원 진학자가 많아지려면 그들에게 호의호식은 못하더라도 연구만으로도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며 "취업률 대신 '기초학문분야 투자비율'을 평가할 필요가 있고 인문학 발전을 위해서는 긴 안목의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해 '기초학문분야 투자비율'과 같은 지표를 개발해 대학이 대학다운 모습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사회적 인력수급의 불균형 문제는 정책적 수요 예측 실패의 문제이므로 입학자원의 감소 및 일자리 수요와 연동해 정원을 축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며 "다만, 입학정원 축소는 교수들의 책임시수 축소와 동시에 이뤄져야 하며 장기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처럼, 인문학 교수들의 책임시수를 6학점 혹은 그 이하로 줄이는 법적인 뒷받침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이고 사회의 위기이고 국가의 위기이며 인문학의 중요성은 세월호와 같은 배에서 평형수의 중요성과 같다"며 "시급하게 인문학 진흥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이고, 인문학을 기초학문으로서 인지하고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대학은 점점 인문학 전임 교수를 충분히 뽑지 않기 시작한지 오래 됐고 교수 충원 계획에서 인문학 관련 학과는 항상 뒷전에 놓이고 있다"며 "인문학 관련 학회에 참석해 본 분들은 학회에 가면 30대와 40대가 없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 가운데 전임 교수 자리가 대폭 줄어들었고 이 분야에 몸을 담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인문학 분야 사람들은 1990년 이후 점점 대학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게 돼 약 25년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인문학 분야에 몸담아 학문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에서 지워진 현실이 됐고 앞으로 학계를 짊어지고 나갈 탁월한 인력은 그만 두고라도 인력 자체가 희소할 경우, 누가 철학계를, 누가 역사학계를 책임질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며 "정부의 지원은 늘었지만 대학에서 인문학자들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점점 좁아들고 학자로 생계를 유지하며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전망은 더욱더 어두워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강 교수는 "대학은 말하자면 인문학적 지식의 ‘발전소’로 발전소가 가동되지 않는다면 대중 인문학조차도 그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원천을 잃고 어느 정도 ‘자가 발전’을 하다가 소멸될 가능성이 높아 국가의 명운을 위해서라도 인문학 연구 진흥과 인문학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개인 연구에 투입되는 연구비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앞으로 한국 학문, 한국 인문학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젊은 학자들의 개별적인 관심에 따른 주제 연구를 지원하는 몫으로 돌리는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고 확장된 인문학은 개인 연구보다는 연구 그룹의 형성이 있어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가운데 연구 지원 방식도 어젠다 중심, 소그룹 중심의 연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포지엄은 인문학 진흥 방안에 대한 학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진행됐던 1차 심포지엄과 3차례에 걸친 권역별 토론회에서 제기되었던 중요 내용들에 대해 종합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교육부는 2015년 부처 업무보고에서 그 간의 인문학 지원 성과를 발전시키고 한계를 보완해 올해 상반기 중 인문학 진흥 종합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문화융성위원회 지난해 8월 열린 제4차 보고회에서 “타 분야에 비해 여건이 열악한 인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효과적인 지원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 중 하나다.

황우여 부총리는 행사에서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토대이며 대학 본연의 기능인 교육과 연구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만큼 기초학문 발전과 국가·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문학 진흥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해나가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이날 심포지엄은 대학의 두 기능인 ‘교육과 연구’를 중심으로 ‘대학 인문학, 이대로 좋은가?’와 ‘인문학 연구진흥과 학문후속세대 양성 방안’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설정했다.

첫 번째 주제는 다시 두 개로 나눠 인문대학 교육과정 개선과 인문계 학생 취업역량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두 번째 주제에서는 인문학 연구진흥과 학문후속세대 양성방안에 대한 인문학 연구자들의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다.

두 번째 발표자인 한호 아주대 교수는 인문계 전공 학생에 대한 설문·면담 결과에 기초해 인문계 학생 취업역량강화 방안을 제안한다.

취업 성공요인 중 복수전공 이수가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가운데 취업연계성 높은 복수전공 이수를 권장하고 디지털 휴머니티, 지역학, 문화산업 등 특성화 주제와 연계한 융복합 전공 개발, 소프트웨어 활용·개발 능력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이 필요함을 언급할 예정이다.

인문학 연구진흥 및 학문후속세대 양성 방안에 대해서는 강영안 서강대 명예교수가 발표한다.

강 교수는 대학이 인문학적 지식의 발전소로 원천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학자들이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확대돼야 하며 연구지원 방식도 아젠더 중심, 소그룹 중심의 연구, 하향식 방식을 통해 국가와 사회, 산업체와 지역공동체에서 필요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성과확산에서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할 계획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류병래 충남대 교수, 이상도 울산대 교수, 함한희 전북대 교수가 지정 토론을 하고 종합토론 시간에는 심포지엄에 참석한 교수, 연구자들이 질의와 제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번 심포지엄을 비롯해 그동안 제시된 학계의 다양한 의견과 제언들을 종합해 6월중 인문학 진흥종합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행사에는 인문학계 교수, 전문가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황우여 부총리는 심포지엄 시작 전 서강대 유기풍 총장을 비롯한 학교 주요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고 고등교육 발전 방향에 대한 학교 현장의 의견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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