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강하늘을 만났다. 드라마 ‘몬스타’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 ‘투윅스’ ‘엔젤아이즈’ 영화 ‘너는 펫’ ‘평양성’ ‘쎄시봉’ ‘소녀괴담’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스물’까지 다양한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든 강하늘은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게 익숙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배역을 따내기 위해 노력을 했죠. 작년 바쁘게 지내오긴 했지만 개봉일이 겹치다보니 다작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미생’이 잘되니까 영화를 3편이나 찍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아니죠. 충분히 고민을 하고 작품 활동을 했어요. ‘순수의 시대’는 본격적인 성인연기인 셈이죠. 지금까지와 다른 결이 분명하긴 해요.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작품이 먼저 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겹치는 캐릭터없이 꾸준히 연기를 해온 그는 “어떤 작품이든 부담감은 있다”고 토로했다. “‘순수의 시대’가 힘들었던 부분은 명확하다. 대본리딩 때는 부담감이 없었는데 촬영 당일에 폭력적인 베드신을 찍고 나니 남자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조금 힘들었다”며 “겁탈하는 장면을 놓고 단순히 연기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 눈 앞에 얻어맞은 분장을 한 강한나가 있으니 그 잔상이 안 사라지더라. 그래서 심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강하늘은 배역이 정해지면 그에 맞는 음악과 그림을 선택하고 이미지를 구축한다. ‘순수의 시대’ 진에게는 장미꽃을 향해 줄지어 올라가는 개미 그림을 선택했다. 붉은 장미를 탐하기 위해 올라가는 개미와 진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노래는 가사가 없는 바이올린 곡을 꼽았다. 추상적일 수 있는 그림과 노래를 선택하면 연기에 한계가 없어지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강하늘은 그림 전시회를 자주 찾는다.
‘순수의 시대’는 제목부터가 끌렸다. 그는 “순수가 착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순수악이라는 단어가 있듯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줏대, 잣대를 갖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순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순진과 순수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딱 그런 내용이라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부연했다.
“처음에는 연극 자체가 재미가 있어 종교가 없는 상황에서 성극대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는 연기는 연극뿐인 줄 알았죠. 그래서 소품팀으로 시작을 했어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도 연극반이 있는지가 1순위였어요. 연극 제작부에 있다가 비는 역할이 있어 처음 연기를 하게 됐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국악예술고로 편입했어요.”
착실하게 꿈을 향해 전진하고 결국 이룩한 강하늘의 연기를, 부모님은 어떻게 보실까? “예전에는 부모님이 공연을 보신 날에는 일부러 늦게 들어갔다”는 강하늘은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소리 들을까봐 그랬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조언들이 고마운 일이라고 깨달았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객관적으로 얘기해준다는 건 행운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코멘트를 듣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가 제 좌우명이에요. 작품을 보기 전에 역할부터 보면 그릇이 작아진다고나 할까요? 작품에 얼마가 나오든, 작품에 해가 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고, 배우고, 배우면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우가 아닐까요? 많은 것들이 배움의 연속이죠. 그리고 SBS에서 상을 받을 때 얘기했는데요. 좋은 연기자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죠.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면 뭐든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강하늘의 원동력은 이런 건강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