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세상보기] 훙바오 대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2015-02-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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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DB]

"20:00 보통 비, 22:30 폭우, 24:00 큰 비.”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양성만보(羊城晩報)가 지난 20일 보도한 기사다. 언뜻 일기 예보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춘제(春節·설) 전날인 지난 18일 온라인 상에서 중국 양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騰訊·텅쉰)와 알리바바(阿里巴巴) 사이에 벌어진 ‘세뱃돈 전쟁’을 이렇게 묘사했다.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 훙바오(紅包·세뱃돈) 주고받기가 초저녁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춘완(春晩·국영 CCTV 설 특집 쇼) 생방송이 무르익어가던 시간에 최고조에 달했다.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이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이번 춘제 때 가장 유행했던 말이 “훙바오 좀 챙겼니?”였다. 필자의 중국 친구들도 집단 웨이신을 통해 서로 설날 인사를 주고 받는 동안 이 질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대다수 중국 네티즌들은 “모바일에서 다른 사람이 쏜 훙바오를 놓치면 녠예판(年夜飯·섣달 그믐 밤 온 가족이 모여 즐기는 식사)도 맛이 없고 춘완도 재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중국에서는 올 춘제를 계기로 ‘모바일 훙바오’라는 새로운 풍속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인터넷 기업의 ‘야심’이 숨어있다. 훙바오 주고받기를 통해 네티즌들이 모바일 결제에 익숙해지도록 만든 다음 이들을 이 시장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설에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피 튀기는’ 모바일 홍바오 마케팅에 나섰던 건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2017년이면 전 세계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가 7210억 달러(약 8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미국의 IT분야 리서치 업체 가트너)이고 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바야흐로 모바일 결제야말로 인터넷 기업들이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여야 할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설 전날인 지난 18일 모바일 훙바오의 ‘원조’인 텐센트가 웨이신을 통해 발송한 훙바오는 10억건에 달했다. 웨이신은 훙바오를 뿌리기 위해 중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춘완 생방송을 이용한 특별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춘완 MC가 “스마트폰을 흔들어 홍바오를 챙기세요”라는 멘트를 날리자 웨이신 흔들기가 절정에 달해 1분당 8억1000만 건이나 될 정도였다. 그 결과 18일 밤 춘완이 방송되는 동안 웨이신 흔들기는 무려 110억 건에 이르렀다. 중국 인구 13억5000만 명 모두가 웨이신 흔들기에 참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각각 8번씩 흔든 꼴이다. 이를 통해 풀린 현금만 해도 5억 위안(약 880억원) 이상이었다.   
 

[아주경제 DB]


알리바바 회장 마윈(馬雲)은 이에 질세라 19일 새벽 훙바오 99만여개를 알리페이(支付寶·즈푸바오·알리바바 소유 온라인결제서비스)를 통해 대거 풀었다. ‘손님’을 끌기 위해 “외계인은 누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나?”라는 수수께끼도 곁들였다. 답은 한 글자였다. 이에 대해 네티즌 3000만명이 약 1억개의 답안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나’라는 정답을 맞힌 사람은 1500만명에 가까웠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윈의 훙바오가 모두 소진되기까지 딱 2분36초 걸렸다.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처럼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에서 벌였던 두 회사간 ‘훙바오 대전’은 결국 텐센트의 승리로 결판났다. 홍바오 건수나 금액 면에서 텐센트가 알리바바를 크게 앞선 것이다. 18일 하루 동안 알리페이를 통해 건네진 훙바오 건수는 웨이신의 10억건에 훨씬 못미치는 6억8300만 건에 불과했다.

훙바오 금액도 알리페이는 40억 위안(약 7040억원)이었다. 이에 비해 텐센트의 경우 웨이신을 통한 현금 훙바오 5억 위안, 카드 훙바오 30억 위안에다 QQ메신저의 훙바오 30억 위안까지 합해 65억 위안이나 됐다. 그 결과 텐센트는 설 연휴 뒤 증시 첫 개장일인 23일 주가가 4%나 뛰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을 갖고 있는 알리페이가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우세를 보일 것이란 견해를 보였다.

이에 비해 국내 상황은 어떤가. 삼성전자가 미국 핀테크업체를 인수하고 다른 국내 IT 기업들이 모바일 결제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중국과는 그 규모와 발전 속도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이러한 현실은 서울 명동에 나가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미 유커(遊客·중국 관광객) '특구'가 돼 버린 명동 일대는 알리페이 광고가 점령해 버렸다.  
 
이제 유커들이 한국에서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만하다. 면세점, 항공사, 쇼핑몰은 기본이고 동대문시장이나 편의점도 포함된다. 서울 지하철과 버스도 알리페이-티머니카드로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다. 벌써부터 한국인들도 알리페이를 쓰려고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안방까지 내주게 됐다. 

(아주경제 국제담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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