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계올림픽 유치전을 위해 이 회장에 대한 “원 포인트 사면”을 두고 “국익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섰다”면서 힘든 결정이었음을 회고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세 번째 유치 도전 자체가 위험한 도박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른 지역이었으면 나 역시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원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런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방관할 수 없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강원도가 발전할 수 있다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서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회장에 대한 사면 복권이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불러올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5%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이건희 회장 사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대하는 35%의 국민들도 절반 이상이 이 회장이 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사면 후 IOC위원직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동계올림픽 유치 행보에 나섰다. 이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1년 반 동안 11차례 해외 출장을 강행하며 평창 유치에 힘을 보탰다. 110명의 IOC 위원을 거의 다 만났고 반대 성향을 보인 IOC 위원을 다섯 번이나 만나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서술했다. 당시 제일모직 사장을 맡고 있던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건희 회장 사위)이 이 회장을 보좌해서 올림픽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고도 언급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좀처럼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이건희 회장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며 “원포인트 사면으로 그가 그동안 평창 유치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마음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국민 여러분이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평창 유치 팀들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열심히 하셨습니다. 저는 조그만 부분을 담당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면부터 동계올림픽 유치 결실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회고한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기억은 외줄타기처럼 다소 극적인 면이 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5월 11일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입원한 뒤 해를 넘기며 장기간 와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