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국내외미술시장에서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색채 추상화가 김가범 화백(68)도 바빠지고 있다. 일본 중국 이태리 미국등의 유수한 미술관의 러브콜이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져 전시계획이 꽉찼다.
김 화백은 특히 오는 12월 중국 베이징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벌써부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우면산 기슭의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붓질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높은 천장과 대규모 전시장에 맞춰 대형작업을 기획중이다. 주제는 ‘산과 색채의 마술’로 정했다. 산을 통해 색감이 흐르는 모습을 색면으로 승화한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원래 화가가 아니었다. '왕년의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쉰셋 나이에 화단에 데뷔한 늦깍이다. 고교시절, 미대를 준비하다 "시집이나 가지. 뭐하러 어렵게 미술을 하려고 하느냐"며 부모님의 만류에 화가의 꿈이 꺾였다. 이후 결혼과 출산, 뒤이은 외국 생활이 이어졌다. 꿈이 있으면 기회는 온다. 마흔 줄에 미대에 입학했다. 1990년대.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10여년간 머물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미술학교 ‘노스리지’와 ‘피어스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 머리도 아프고 우울증도 겪었어요."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폭발한 열정은 단박에 인기작가로 부상시켰다. "10여년의 화력으로서는 나오기 힘든 완성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스위스 바젤,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팔려나갔다.
붓을 잡은후 작업에만 매달렸다는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유럽과 미국등 아트페어 100여회 초대되어 내공을 쌓았다.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로 풀어낸 '꿈의 산(Dream mountain)' 연작은 한지에 먹으로 그린 듯한 한국화를 연상시킨다. 한편의 서정시어같은 화면들, 뛰어난 화음의 매력을 지닌 조형미가 압권이다. 추상 자연주의이면서도 자연의 본령, 생성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국내 화단에서는 제 작품을 보고 ‘마운틴 컬러’ 또는 ‘선율의 회화’라고 부르더군요. 형상과 추상이 한데 어우러지고, 색을 칠하는 서양의 유화 전통과 선의 미학이 중시되는 동양화가 한데 어우려졌지요."
김화백은 "단색조의 화려함은 산이 내게 내린 선물"이라며 우면산을 예찬한다. “화폭의 색들은 우면산의 터럭이라 할수 있는 초목부터 살이라 할수 있는 흙의 아우라로 그려집니다. 어느날 산이 주는 색을 따라가다보니 내가 우주 어딘가에 이르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게 됐지요"
김화백은 "화폭에 산의 기운이 선으로 형상화되면서 비로소 산이 내게 모든 것을 내주고 있음을 알게됐다. 우면산의 생기는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기운이자 내 그림의 완성"이라고 했다.
사실주의 구상화에서 반추상의 표현주의 작업으로 변신한 작가는 처음에 블루톤의 화면에서 레드, 그린 옐로우 금색등 다양한 색채의 변주를 통해 자연의 탄생과 생성, 소멸의 과정을 그려냈다. 이전의 작업들이 구체적 언어였다면 최근작들은 절정의 색채감각과 고도의 구성감이 돋보인다.
색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화폭에 최근에는 배같은 형상이 물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그는 "사람들은 배라고 하지만 그 형상은 4차원의 우주로 이르게 해주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색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화폭에 최근에는 배같은 형상이 물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그는 "사람들은 배라고 하지만 그 형상은 4차원의 우주로 이르게 해주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