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하균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교류의 상징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시(詩)를 인용하며 한반도의 남쪽 지리산 기슭의 화개동(花開洞)을 언급해 하동 화개동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통일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의 시(詩)를 또 인용했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시 주석이 최치원 선생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27일 하동군에 따르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노래한 ‘화개동’은 지리산 쌍계사와 칠불사 계곡 일대를 말하는데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이 맑은 계곡 물이 화개장터를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화개(花開)라는 이름은 ‘눈 속에서도 칡꽃(葛花)이 핀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는데 실제 화개동에는 이른 봄 매화를 시작으로 벚꽃, 배꽃, 철쭉, 녹차꽃 등이 초겨울까지 만개해 별천지를 연출한다.
이곳 화개동에는 지금도 고운 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가 868년 12살의 나이에 당나라 유학을 떠나 과거에 급제한 뒤 당나라 관리를 지내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는 884년 귀국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좌절하자 전국 명승지를 유람하며 많은 글을 남겼는데 당시 별천지 화개동에 상당기간 머물며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의 비문을 고운 선생이 직접 짓고 썼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 말 고승 진감선사 혜소(彗昭774∼850)의 높은 덕과 법력을 앙모한 탑비는 붓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체로, 선생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또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경남도 기념물 제123호 푸조나무도 선생이 신라 말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에 들어갈 때 꽂아 뒀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자란 나무라 전해진다.
선생은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자신도 살고 이 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높이 25m 둘레 6.2m로 쌍계초등학교 왕성분교 입구에 위치해 지금도 푸름을 더하고 있다.
쌍계사 입구 바위에 새겨진 ‘쌍계석문(雙磎石門)’이라는 네 글자도 신라 헌강왕이 최치원 선생에게 쓰게 해 새겼다고 전해지는데 법계와 속계를 경계 짓는 상징적 석문으로, 후대인에게 시상의 소재가 되고 있다.
또한 선생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지리산 삼신동으로 들어갈 때 ‘여기에서 귀를 씻고 신선이 돼 지리산으로 입산했다’는 전설의 ‘세이암(洗耳嵒)’과 지팡이로 ‘삼신동(三神洞)’이라는 글자를 썼다고 전해지는 바위 각자도 화개동에 남아있다.
특히 세이암이 있는 대성계곡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선계를 이루는 곳으로, 당시 선생이 목욕을 하는데 게가 발가락을 물어 이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 마라’고 해 계곡에 게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외에도 화개동에는 선생이 청학동에 산다는 ‘청학을 불러들여 놀았다’고 전해지는 ‘환학대(喚鶴臺)’ 각자가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생이 말을 타고가다 머물렀던 말 발굽의 흔적 ‘마족암(馬足岩)’도 환학대 위쪽에 있다.
이처럼 고운 선생이 화개동에 머물며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화개동에는 지금도 선생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시진핑 주석이 인용한 별천지임이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