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에는 ‘훠처방(貨車幫)’이라는 화물차기사를 찾아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가구나 침대 등 부피가 큰 물건을 배달하거나, 이사짐을 운반하려 할 때 훠처방 어플에 접속하면 손쉽게 화물차기사와 연락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 곳에서 화물차기사들의 평판을 조회할 수 있고, 가격을 협상할 수도 있다. 훠처방은 QQ메신저로 유명한 텅쉰(騰訊, 텐센트)이 개발한 어플로, 지난해 4월 출시와 동시에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텅쉰은 훠처방의 거래기록들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후 화물차기사들의 신용도를 스스로 평가한다. 성실하고 평판이 좋은 화물차기사일수록 일감이 몰린다. 가격흥정을 하는 태도는 개인의 유동성을 파악하는 한가지 자료다. 한달에 몇건의 운송을 처리하는지를 안다면 각 기사의 한달 수입을 알 수 있다. 텅쉰은 이 같은 자체적인 분석작업을 거친 후 우량 고객들을 추려내 대출영업 대상으로 삼는다.
SMS로 영업대상 화물차기사들에게 저리의 대출상품을 권유하면, 문의가 들어오고, 텅쉰은 대출을 진행한다. 화물차기사들은 중국의 시중은행에서 돈을 대출받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신용대출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우며, 대부분 화물차기사들의 신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화물차기사들은 중국 시중은행들의 사각지대인 셈. 그동안 대출이 필요한 화물차기사들은 금리가 높은 사금융이나 P2P대출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텅쉰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내놓은 대출상품은 안심할 수 있으며, 금리 역시 낮은 수준이다. 화물차기사들은 텅쉰의 대출상품에 대해 무척 호의적이다.
◆돌풍 선두주자 텐센트은행
텐센트가 설립한 민영은행의 이름은 ‘선전첸하이웨이중(深圳前海微衆)은행’이다. 영문명으로는 위뱅크(WeBank)로, 텐센트의 SNS프로그램인 웨이신(微信)은행(영문명 위챗, WeChat)을 본따 지은 이름이다. 텐센트은행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12월12일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로부터 개업허가를 받았고, 지난해 12월 28일 공식적으로 사이트를 오픈했다. 텐센트은행의 자본금은 30억위안(약 5100억원)이며, 텐센트가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민영은행의 최대주주 지분율을 30%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바이예위안(百業源)투자유한공사와 리예(立業)부동산 등이 기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텐센트은행의 진용은 화려하다. 핑안그룹 부총경리를 역임한 구민(顧敏)이 이사장을 맡았고, 중국 수출입은행 부행장이던 차오퉁(曹彤)이 행장으로 영입됐다. 부행장으로는 핑안그룹 산하 온라인 금융업체인 루팍스(陸金所)의 총경리 황리밍(黃黎明)과 핑안은행 전 CRO(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 왕스쥔(王世俊)이 임명됐다. 출범 초기 텐센트은행 직원 수는 200명 정도로 예상된다. 텐센트은행은 2~3년내 직원 수를 500명까지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2000~3000명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텐센트은행의 최대강점은 텐센트 산하 모바일메신저 웨이신(위챗) 가입자 4억명이다. 특히 텐센트는 훠처방과 같은 서브사이트를 다수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서브사이트들이 초기 텐센트은행의 주력 영업대상이 될 전망이다. 텐센트은행은 당분간 수신영업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시중은행들과 업무영역이 겹치지 않는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것. 텐센트은행 구민 이사장은 “텐센트은행은 순수 인터넷은행으로 직원 수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지점도 두지 않고 대부분의 업무가 IT 기술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알리바바은행 3월 개업 예정
중국은 기업자금난과 사금융의 폐혜를 없애기 위해 민영은행 설립을 장려하고 있다. 기존의 시중은행은 문턱이 높아 일반인들이나 중소기업들은 대출받기가 힘들었다. 이들이 결국 고금리의 사금융을 사용하면서 기업경영 원가가 늘어나 중국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같은 차원에서 지난해 3월11일 중국 은감회는 국유자본을 제외한 순수 민간 기업만 출자·운영할 수 있는 민영은행 시범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중국의 민영은행은 1996년 설립된 민생은행이 유일했다.
은감회는 원저우민상(溫州民商)은행, 톈진진청(天津金城)은행, 상하이화루이(上海華瑞)은행, 저장왕상(折江網上)은행, 선전첸하이웨이중(深圳前海微衆)은행 등 5곳에 대해 설립을 승인했다. 이 중 현재 유일하게 영업승인을 내준 텐센트은행에게는 일반인·기업을 대상으로 한 단·중·장기 대출, 외환 거래, 채권, 은행카드 등 사업이 허용됐다.
원저우민상은행은 원저우기업인 정타이(正泰)전기그룹이 주도하며, 신소재 업체인 화펑(華峰)그룹이 참여한다. 이 은행은 현재 유동성위기를 맞고 있는 원저우 지역의 중소기업들을 주력 영업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톈진진청은행은 화베이(華北)수력발전과 마이거우(麥購)부동산이 함께 설립하는 은행으로 톈진빈하이(濱海)신구에 입주할 중소기업과 개인들을 주요 영업대상으로 한다. 상하이화루이은행은 물류업체인 쥔야오(均瑤)와 패션기업인 메이방(美邦)이 주도한다.
이 중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은행은 저장왕상은행이다. 이 은행의 대주주는 알리바바다. 올해 3월 정식 영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마이진푸(螞蟻金服)가 최대주주로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중국 최대 민영그룹인 상하이 푸싱(複星)그룹이 지분 25%, 자동차 부품업체 완샹(萬向)그룹이 18%, 닝보(寧波)시 진룬(金潤)자산경영유한공사가 지분 16%를 보유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보유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은행영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리커창 강력지원 약속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새해 첫 지방시찰지로 선택한 곳은 중국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이었다. 선전에서 처음으로 들린 곳은 다름아닌 텐센트은행이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4일 광둥성 선전 첸하이(前海)의 경제특구에서 열린 텐센트은행 개소식에 참석해 첫번째 대출 버튼을 눌렀다. 선전시의 트럭운전사 쉬쥔(徐俊)은 첫 대출자로 3만5000위안(657만원)을 대출받았다.
리커창 총리는 텐센트은행 관계자들에게 “당신들이야 말로 개척자”라며 “웨이중은행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 중국 금융개혁엔 커다란 한 걸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리커창 총리는 영세기업과 일반 서민들을 위해 서비스한다는 텐센트은행의 이념을 높이 평가했다. 리 총리는“당국은 인터넷금융기업의 혁신을 위한 양호한 발전환경을 조성해 따뜻한 봄날을 선사할 것”이라고 인터넷은행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 훙위안(宏源)증권연구소 이환환(易歡歡) 부소장은 “리커창 총리가 새해 첫 지방시찰로 첸하이의 텐센트은행을 방문한 것은 중국 민영은행과 인터넷금융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신호”라며 “중국 인터넷금융의 봄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터넷금융, 중국 핵심경쟁력 될 것”
중국의 인터넷금융이 중국의 핵심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지난 21일 국제통화기금(IMF)주민(朱民) 부총재는 텅쉰재경(腾讯财经)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금융은 기본적으로 국제적이며, 중국 본토의 거대한 시장이 지탱하고 있기에 향후 중국의 핵심경쟁산업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인터넷금융산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중국당국이 신속하게 관리감독 규정을 내놓고 세부 시행세칙까지 마련해야 한다”면서 “세부규정이 얼마나 정교하고 합리적이냐에 중국의 미래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주민 부총재는 “온라인 금융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며 “금융과 실물경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인터넷금융의 가장 큰 경쟁력이며, 중국에는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IT기업들이 즐비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인터넷금융의 리스크로 관리감독의 어려움, 유동성 확보의 어려움, 자본금확대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