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이날 성명에서 압둘라 국왕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제(79)가 왕위를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압둘라 국왕은 최근 수년 동안 고령으로 인한 건강문제로 종종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난 해부터 살만 왕세제가 국제회의와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등 사실상 국왕 역할을 했다. 장례식은 이날 금요예배(줌마)가 끝난 후 진행된다.
◆압둘라 국왕은 누구?
4대 칼리드 국왕이 1975년 제2부총리로 임명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직에 입문했고 1982년 파흐드 국왕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왕세제로 책봉됐다. 파흐드 국왕이 건강이 악화되자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했고 2005년 파흐드 국왕이 별세하면서 그해 8월 1일 81세의 나이로 제6대 왕이 됐다.
압둘라 국왕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와 경제 개방 등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현대화를 추진한 국왕으로 여겨지고 있다.
AP와 로이터 등은 "압둘라 국왕은 극도로 보수적인 무슬림 국가에서 조심스럽게 사회ㆍ경제적 개혁을 시도했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압둘라 국왕의 확고하고 열정적인 믿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압둘라 국왕은 지난 해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명단' 1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권 신장,경제 개방 업적vs민주화 추진엔 미온적
압둘라 국왕은 집권 10년 동안 국왕으로 있으면서 이전 어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들보다 여권 신장에 힘썼고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압둘라 국왕 재임 기간 동안 보수적인 무슬림 사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여권, 특히 참정권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재위 첫 해인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통해 지방행정자문회의 위원 592명을 선출하고 여성을 공직에 기용했다. 2011년엔 '아랍의 봄'으로 분출한 민주화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의 참정권을 승인했다. 2012년엔 처음으로 여성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허용했다.
2013년 1월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법률 심의·지문 기구인 슈라위원회의 위원 150명중 20%인 30명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왕령을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사회활동을 권장해 직업을 갖을 수 있도록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에게 문호를 넓히게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경제 분야에서도 개방화가 급속히 진전됐다. 걸프지역에선 제일 마지막으로 2013년 6월 29일부터 주말을 기존 목·금요일에서 국제적 교류 증가에 발맞춰 금·토요일로 변경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개방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추진했다.
원유 수입으로 축적된 자금으로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주도했고 자국민을 위한 일차리 창출에도 힘을 쏟았다.
외교적으로는 재임 기간 내내 중동의 강력한 미국의 우방으로서 친미 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을 계기로 중동 국가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자 압둘라 국왕은 정치적 민주화 추진 대신에 국민들의 사회복지 혜택을 대폭 늘려 민주화 시위가 사우디아라비아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이에 대해 ‘돈으로 민주화를 막고 군주제를 유지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살만 왕세제 승계, 기존 정책 유지될 듯
왕위를 물려받을 살만 왕세제는 압둘라 국왕의 이복동생이다. 보통 군주국에서는 왕의 첫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형제세습으로 왕위를 이어간다. 이는 지난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왕조를 연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사우드 국왕이 1953년 승하하면서 형제세습 원칙으로 왕위를 이어가도록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살만 왕세제는 아버지인 이븐사우드 초대 국왕의 5번째나 6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하사 알 수다이리가 낳은 13명의 자녀 중 한명이다. 현재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다. 수다이리가 낳은 7명의 아들 중 국왕이 된 사람은 맏아들 파흐드에 이어 살만이 두 번째다. 2012년 동복형이자 당시 왕세제 겸 내무장관이었던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사망하자 왕세제로 책봉됐다. 이 '수다이리 7형제'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실세다.
살만 왕세제가 왕위를 계승하면 지난 해 3월 부왕세제로 임명된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70) 왕자가 왕세제가 된다.
살만 왕세제가 왕위에 올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존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압둘라 국왕이 최근 몇 년 동안 입원치료를 반복하면서 왕위 승계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고 이복동생인 살만 신임 국왕이 선왕의 기조를 따르는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로이터는 “살만 국왕이 왕세제 시절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내며 압둘라 국왕의 통치를 보좌해왔고 앞으로도 대미 관계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살만 신임 국왕도 군주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대외적으로는 친미 노선을, 대내적으로는 여권 신장과 경제적 규제 완화 등 개혁을 추진해 온 압둘라 국왕의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7년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됐던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살만 왕세제는 당시 미 외교관들과의 대화에서 “개혁을 추구하되 보수전통주의자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소유한 방송사의 자말 카쇼기 회장은 로이터에 “살만 국왕이 압둘라 국왕의 개혁조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계승할 것”이라며 “살만 국왕은 현재의 상황을 존중하는 인물이고 보수파의 입장에 가치를 두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폭락과,극단 이슬람 무장세력 확장 등 난제 산적
하지만 살만 신임 국왕 앞에는 수 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국제유가 폭락은 살만 신임 국왕의 앞날에 제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 해 6월보다 절반 넘게 급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21일 발표한 지역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현재와 같은 낮은 국제유가가 지속되면 걸프지역 6개 산유국(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이 올해 3000억 달러(약 326조원)를 손해본다”며 “원유 수익 의존도가 높은 카타르, 이라크,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가 낮은 국제유가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 극단 이슬람 무장세력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도 살만 신임 국왕에게 적지 않은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