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사랑에 눈먼 재벌 2세부터(SBS ‘상속자들’, KBS2 ‘꽃보다 남자’) 고려 황실 호위 부대장(SBS ‘신의’)까지 현대물과 사극을 오가며 여심을 자극했던 ‘꽃미남’ 이민호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과 만나 피 비린내 진동하는 누아르를 만들어 냈다.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누아르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영화를 한다면 스물여덟 즈음에 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었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작품을 만난 것뿐이죠. 20대 후반이라면 스크린에서 보는 제 모습이 억지스러울 것 같지 않았거든요.”
이민호는 넝마주이로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내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강남개발 이권 다툼에 뛰어든 종대를 맡았다. 폭력보다 더 잔인한 거대 권력에 하릴없이 휘둘리며 작은 꿈을 쫒다가 큰 것을 잃고 마는 청춘이다. ‘강남 1970’에 우리가 그간 봐왔던 이민호는 없다. 거지꼴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생라면을 우적대고, 피칠갑을 하고 우산으로 사람을 쑤신다.
음모와 배신으로 뒤덮인 삶, 허락될 수 없는 사랑,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액션…어느 하나 표현하기 쉬운 것은 없어 보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다. 우려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단다.
“항상 새로운 것을 즐겨요. 낯선 것들은 언제나 활력을 주죠. 유 감독님과의 작업이 고되다는 소문을 들어 겁먹었는데 저는 금방 ‘O.K’를 받았어요. 시사회 때에는 긴장되긴 하더라고요. 결과물을 관객과 함께 보는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새로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종대에게 절박함이 있다면 저에게는 책임감이 있죠.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많은 팬이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무한도전-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를 보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절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잖아요. 그때를 추억하며 지금을 살아가고요. 저에게도 찬란한 과거를 떠올리는 시기가 오겠죠. 그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에요”
“이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내 기분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흘러가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의견이 중요시되고…그런 것들이 가끔 부담으로 다가와요. 회식에서 투명인간처럼 있고 싶은 순간이 저에게도 분명 있으니까요. 어어? 심각한 거 아니에요. 아주 가끔, 잠깐 그런 거예요.” 심각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기자의 표정에 이민호는 또 낄낄거렸다.
교복을 입은 작품이 유독 잘돼서일까. 소년의 모습이 선명한데 내년이면 서른이란다. 본인도 놀랍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으. 서른이 되는 건 정말 싫어요. 소년의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스물여섯에서 스물여덟이 참 좋은 나이 같아요. 소년의 느낌도, 남자의 느낌도 다 낼 수 있거든요. 소년 같이 살고 싶은데 ‘나이 먹고 왜 저래’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서른이 되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