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이날 회의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양국 기업인들은 산업협력에 있어 ‘제4세대 협력’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한·일 간 1세대 협력은 한국기업이 일본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는 것이었다면, 2세대 협력은 부품소재 부문에서의 협력을 일컬으며, 3세대 협력에서는 한국기업의 성장으로 양국 기업 간 경쟁의 단계에 도달했다. 이에 4세대 협력은 경쟁을 넘어 양국기업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차세대 에너지와 스마트시티, 신흥시장 과다경쟁 방지 등을 통해 협력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엄 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지역경제통합에 있어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특히,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대형 경제권에는 경제공동체가 있으나 동아시아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한·중·일에는 경제공동체가 없다. 이를 위해 3국이 협력해 나가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금융위기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동아시아 지역 자본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를 통해 아시아 차원에서 지원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아시아 전체 투자와 무역을 저해하는 비관세장벽 제거에 공동 대응해 나가자고 역설했다.
한·일 간 경제협력 현안을 해소하기 위한 의견도 다수 제기됐다.
엄 본부장은 “산업협력의 경우 양국 기업 협력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경쟁도 하고 있지만,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교류사업을 지속해서 산업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한·일 간 산업 분업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면 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역내에서의 협력과 공존의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라는 제안도 있었다. 이를 통해 (중국 등 아시아국가 재계 단체들이 참여하는) ‘원 아시아 재계회의’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양국 간 경제협력은 무역, 투자, 제조업 등 전통적인 면에 국한됐지만 미래에는 기존과 다른 방식의 협력이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자원의 공동개발, 금융분야 협력, 관광·서비스·에너지 환경 등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엄 본부장은 “관광의 경우 인적 교류가 중요하다. 엔저 때문에 한국국민들의 일본 방문이 늘어나는 반면, 일본인의 한국 방문은 줄어들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중·일 간 비자 발급 절차의 간소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한·일 해저터널, 한·중 해저터널이 뚫리면 3국 간 인적교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양국 정상이 관광 교류 확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업인들은 강조했다. 월드컵 공동 개최가 한류 바람이 부는 기반이 됐듯이 앞으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도쿄 하계 올림픽에 맞춰 교류 협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기업인들이 나서서 미리 준비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더불어 양국 모두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보험이나 연금 등 금융 협력도 강화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제3국 공동진출과 관련, 엄 본부장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한·일경제협회와 일·한경제협회가 공동 사절단을 올해는 미얀마에,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에 파견했다”며 “플랜트. 발전소 수주에 있어 과당 경쟁을 피하고 양국기업들이 초기부터 협력하면 서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한편,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엄 본부장은 “두 단체는 물론 한·일경제협회와 일·한경제협회가 모두 참여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해 지난 50년간의 한·일 관계를 평가하고, 미래의 50년을 전망해 볼 예정”이라며 “내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25회 한·일 재계회의 개최 전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래 50년을 이끌어갈 젊은 기업인 교류의 장을 만들어 양국 젊은 기업인들과 만남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엄 본부장은 7년 만에 한·일 재계회의가 재개될 수 있었던 것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노력과 더불어 지한파로 불리는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의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경제인회의에 허 회장 기조연설자로 초청 받았는데, 이때 게이단렌 회장을 만나서 회의 재개를 제안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전경련 사무국이 허 회장의 뜻을 사전에 전달했다”며 “허 회장이 취임 전이었던 사카키바라 회장과 오네쿠라 히로마사 당시 회장을 만나 연내 회의 개최를 제안했고, 사카키바라 회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해서 성사됐다”고 전했다.
엄 본부장은 “사카키바라 회장은 한국에 250차례 이상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한국 사랑이 지극하다”며 “게이단렌 회장 취임 후 곧바로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며 전경련과 한·일 재계회의를 재개하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날 회의에는 게이단렌 회장단 19명 중 14명이 참여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돼 한·일 재계회의에 대한 일본 측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엄 본부장은 “이는 경제교류 활성화를 희망하는 양국 재계 기업인의 소망이 도출된 것”이라며 “정부 간 관계는 잘 안 풀리고 있지만 경제계가 해빙 무드를 만들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