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대표 취임 이후 첫 외교행사로 방중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차기 대권 선점을 위한 ‘자기 정치’의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거수기 논란에 시달렸던 집권 여당의 대표가 중국 방문의 마지막 날인 16일 “정기국회 뒤 개헌 논의를 막을 수 없다”고 전격 선언, 여의도 전체가 개헌 후폭풍을 맞게 된 셈이다.
당장 개헌론자인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김 대표가 개헌 논의를 제안한 직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다만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실세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힐 공산이 커 개헌 논의가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눈여겨볼 대목은 개헌의 각론과 시점이다. 김 대표는 3박4일 중국방문의 ‘마지막 날’인 이날 홍치아오(紅橋) 영빈관에서 기자간담회 열고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 반대를 천명한 박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도 각론도 집권여당의 1인자인 대통령과 결을 달리한 것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등과 함께한 중국 순방에서 개헌 발언을 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상하이 연대’의 작품이란 얘기도 나온다. 김 대표의 개헌 발언 안에 적잖은 정치적 함의가 내재돼 있다는 관측도 이 지점과 궤를 같이한다.
김 대표가 주장한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형태다. 즉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는 ‘대통령’이, 행정부 등 내치는 국무총리가 각각 맡는다.
핵심은 ‘권력 분점’이다. 김 대표가 차기 대권을 차지할 경우 친박계와 내치를 고리로 권력 나누기가 가능한 셈이다.
이 경우 차기 대권 행보 과정에서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피로감을 불식시키는 것은 물론 여야 혁신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이원집정부제 주장을 놓고 대중적 정치인이 없는 친박계를 포용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과거 보수정부의 정권 연장 실패의 학습효과와 무관치 않다. 앞서 YS(김영삼 전 대통령)정권 시절인 지난 1996년에도 어김없이 개헌 태풍이 불었다.
하지만 1997년 ‘9룡(龍)’의 대결로 불린 여당 대선 경선에 앞서 제기된 개헌 논의는 금세 시들었다. 개헌 시기를 놓친 여당은 이후 이수성·이회창·이홍구·이인제·박찬종·김덕룡 등 차기 대권 주자들의 권력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권력 분점의 시기를 놓쳤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의 출범은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도 한몫했지만, 해방 이후 단 한 번의 정권교체도 없었던 보수정권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YS계 출신인 김 대표가 문민정부의 정권교체 연장 실패에 대한 학습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1987년 6월 항쟁의 단초가 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주도한 YS계 문하생이 ‘87년 체제’의 한계를 전면에 내걸고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할 경우 만만치 않은 이슈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김 대표가 ‘이원집정부제’라는 주도적 이슈를 내건 것은 차기 대권을 위한 ‘독자적 영역 구축’은 물론 권력 분점을 통해 독점적 권력에 대한 비판을 불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