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법이 제정돼야만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월호 대참사의 발생 원인을 밝히고 다른 하나는 배안에 갇혀있던 304명의 희생자들 중에서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의 부실 재난대응 및 구조 활동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다.
진상규명만이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된 어린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방법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완벽한 재난관리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명예롭게 해주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은 정부나 새누리당도 누누이 밝히고 있으면서도 피해자 가족이 제안하는 세월호법에 대해서만 유독 털끝만큼의 협상 가능성조차 배제하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조차 실망스럽고 어정쩡한 협상태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이 둘의 입장은 서로 다른 듯하나 진실규명에 따라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의 무게와 그로인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본질은 같다. 표면적으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인 듯 대하하고 있지만 가장 큰 합의의 걸림돌은 바로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인 것이다. 책임자 처벌은 피해자가족들이 내세우고 있는 입장이 아닌 듯하다.
세월호법 협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는 적대감과 불신이다. 우선 세월호 피해자가족들이 비상식적이고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짐으로써 국민들 간에 불필요한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가족은 공식적으로 진상규명만을 요구한다. 진상규명을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검사가 임명될 수 있어야 하고 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해줘야 하며 그런 내용을 법안에 담아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명하고 당연한 요구인가.
보이지 않는 쟁점인 책임자 처벌에 대한 문제가 세월호법 제정과정은 물론 제정이후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결정적 장애요인이 될 수 있는가. 이유는 이렇다. 지금처럼 관련법과 제도 또는 재난관리매뉴얼이 정교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가 분명이 목격한 결과에 대한 것조차 인과관계를 규명하긴 쉽지 않다.
위급한 재난상황에서 관련 기관이나 담당자가 제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또는 대응 후 구조를 못한 경우에 대한 잘잘못을 밝히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난대응이나 구조실패의 책임주체를 가리기 위해서는 관련자의 솔직하고 자발적인 증언이 필요한데 처벌을 전제로 할 경우에는 누가 그 증언을 해주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된다면 설사 세월호 피해자 가족의 원안대로 법안이 제정되더라도 실체적 진실규명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재난관리시스템의 혁신기회 또한 요원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그간 우리가 벌인 세월호법 제정노력이 허공을 향한 한풀이용 헛손질로 끝나버리게 될 공산이 크다.
잠시 눈을 돌려보자. 미국 남북전쟁의 승리를 눈앞에 둔 링컨은 패전으로 궁지에 몰린 남군을 일거에 쓸어버리자는 참모들의 조언을 묵살했다. 링컨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보다 전쟁이후 갈라졌던 남·북 화합 등 통합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미합중국을 건설할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45일간의 단식을 중단하는 결단으로 양보했다. 그럼 결론은 명확해진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