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기존의 IBM시스템을 유닉스시스템으로 교체할 것을 검토중이던 KB측은 IBM이 유닉스 수준으로 가격 인하를 제시함에 따라 전산시스템 교체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IBM이 끝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결국 그룹 내 갈등을 조장한 셈이 됐다.
단지 국민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금융사들은 IBM으로 인해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번 KB금융 사태를 계기로 IBM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22일 KB지주와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IBM은 국민은행에 유닉스 수준으로 전산시스템 비용을 낮춰주겠다고 구두 제안했다. 많은 은행들이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산시스템을 교체하는 이유는 가격경쟁력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 논의는 어윤대 전 KB지주 회장 재임 때부터 시작됐다. 어 전 회장 재임 당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IBM과 유닉스를 비교해왔고, 결국 가격이 저렴한 유닉스로 교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IBM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가격 인하를 제시해놓고 끝내 공식 가격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IBM의 태도에 지친 KB금융은 지난해 11월 유닉스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지었다.
그런데도 IBM은 국민은행에 전산시스템 교체계획 재검토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같은 IBM의 '오락가락 행보'에 KB금융 경영진 간 갈등만 깊어지고 말았다.
금융권에서 이번 KB금융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IBM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번 사태로 인해 KB금융이 전산시스템 교체를 포기하거나 잠정 보류하고, IBM과 재계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사들 역시 IBM에 불만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금융권 전산사고에 IBM이 연루된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IBM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서 비켜나 있었고 모든 비판은 금융사에만 쏠렸던 게 사실이다.
주요 국내은행 7곳 중 신한·하나·농협·외환은행 등 4곳이 전산시스템으로 유닉스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10월 중 유닉스로 교체할 예정이다. IBM을 사용 중인 곳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