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사외이사들이 사태해결 방안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 내부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상존하게 됐다.
국민은행은 이번 사태에 대한 논의하기 위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감사위원회와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는 오후 8시께 IBM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체제 등 모든 방안을 열어놓고 재입찰을 실시하자는 은행 경영협의회 결의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이사회는 자정을 넘긴 0시30분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이사회에 앞서 열린 경영협의회에는 이 행장과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 본부장들이 참석했으며 사외이사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웅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24일 결정된 유닉스 기종 선정 진행상황에 대해 현재 금감원으로부터 검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행절차를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영협의회의 안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정 상임감사는 보류 결정에 대해 "은행 경영협의회에서 결정된 의견을 존중한 것"이라며 "경영협의회 당시 경쟁입찰로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정 상임감사는 전산시스템 교체 여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감사보고서에서 지적된 절차적인 하자나 기술성에 대해 전문평가단을 구성해 점검하고 치유하는 등 합리적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라며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행장도 "금감원에서 검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보고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라며 "지난 이사회 의결에서 업체를 선정하던 과정은 중단하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추이를 보면서 추가적으로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시선은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집중될 전망이다.
금감원이 국민은행 내부 갈등에 대해 KB금융의 지배구조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사하기로 하면서 갈등 당사자인 이 행장을 비롯해 임 회장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 당초 이의를 제기한 이 행장과 정 상임감사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교체를 강행한 사외이사들을 비롯한 임 회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금감원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면 이 행장과 정 감사가 이사회의 결정을 뒤집으려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당초 이번 사태가 밝혀지자 김재열 KB금융 전무(CIO)는 즉각 보도자료를 배포해 "상임감사가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은행·카드 이사회 결의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부 갈등 봉합 및 금감원의 검사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은행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이번 사태에 따른 여진이 상당 기간 존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임 회장과 이 행장 선임 당시 '낙하산 인사'라며 선임을 반대한 바 있는 국민은행 노동조합(금융산업노동조합 국민은행지부)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내달 9일 국회 토론회 개최 등으로 이번 사안에 대한 근본적 원인과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며 "어설픈 봉합과 꼬리 자르기로 대충 넘어갈 경우 관치와 낙하산으로 만신창이가 된 KB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어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주와 은행을 막론하고 최종 책임 당사자들의 퇴진운동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