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총체적 난맥상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부패 고리, 안전불감증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바닥으로 추락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국가재난시스템 재구축, 인적쇄신의 전면개각 등 후속조치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공직사회 기강과 조직문화 개혁 없이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이번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 초동 대처를 보면 우후죽순 부처별 사고수습대책본부 설치, 주먹구구식 부처별 현장 상황 집계와 지휘명령체계 다원화 등 부처이기주의에 따른 낡은 틀과 관행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국민의 불신만 키우는 꼴이 됐다.
박근혜정부가 출범 직후 복지부동 공직사회를 서비스마인드로 개조하기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정부 내 소통과 협업을 강화하겠다며 ‘정부3.0’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가 선정한 중앙부처 간 협업과제만도 170개에 이른다.
박근혜정부는 재난대응과 관련해서도 협업 체제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산사태가 발생하면 국토교통부·소방방재청·한국도로공사·산림청 등 관련부처가 공동으로 대응하고, 화학사고 예방·대응을 위해 안전행정부·환경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소방방재청 등 6개 부처가 협업하는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정부3.0’은 이번 세월호 사고 수습과정에서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같은 실패가 예견돼 있었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해 11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사고수습본부를 지휘하면, 실질적으로 안행부 장관이 다른 부처 장관을 명령체계에 의해 지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시 기수와 직급을 철저히 따지는 서열 구조, 부처별.부서별로 철저히 일을 나누고 그에 따른 책임과 성과를 평가하는 관료조직 특성상 부처 간 협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관가의 인식이다.
‘정부 3.0’의 또 다른 숙제인 부처 이기주의 혁파는 역대 정부도 핵심적으로 추진해온 개혁과제이자 고질적인 병폐이다.
게다가 공직사회는 고시 기수 서열에 따라 선후배들이 똘똘 뭉친 ‘관피아’ 집단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낸 `해피아`뿐만 아니라 모피아(기획재정부),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교피아(교육부), 국피아(국토교통부)까지 부처마다 전관예우를 통한 뿌리깊은 부패 고리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퇴직 후 산하단체 회장, 부회장, 고문, 감사 등을 전전하며 친정과 뒤엉켜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노욕 집단으로 변질됐다.
전문가들은 이들 집단의 전관예우는 관련법으로 엄하게 금하는 것이 시급하며, 근본적으로는 ‘관피아’ 뿌리인 고시제도를 손질해 각 부처 고시 출신을 소수파로 줄이고 민간 전문가를 절반 이상으로 확충해 공직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총리나 장관의 역할 부재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가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전반에 걸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총리나 장관이 소신행정을 펼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여당 내부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이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지적하기 때문에 각 부처는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완벽히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고 정부의 한 간부는 말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총리 사퇴로 향후 개각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인적 쇄신뿐 아니라 총리와 장관들이 각자 권한과 책임에 따라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국정운영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