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삶을 살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지역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 성장, 주위의 권유로 1991년 중랑구 의원에 출사표를 던져 당선됐다. 중랑구에서 4회 연속 출마와 당선이란 기록을 세웠다. 제4대 중랑구의회 의장을 거쳐 2010년 더 큰 포부로 서울시의회에 당당히 도전해 뱃지를 달았다.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서 각각 최우수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서울시 구의회 의장협의회 부회장, 환경감시중앙연합회 부회장, 한국대학핸드볼연맹 회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랑구협회 수석부회장, 민주당 서울시당 국민건강증진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과거 독도 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9~2010년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열고 있는 일본 시마네현으로 항의집회 길에 나섰다가 일본 경찰로부터 억류되기도 했다.
어린시절에 겪었던 가난의 고통으로 인해 중단된 학업은 마흔이 넘어 다시 시작됐다. 1992년 성지중고등학교(강서구 화곡동)에 들어갔고, 힘든 여건에서도 학업에 정진해 결국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이후 송곡대학 상담복지학과를 나와 명지대 사회교육원과 서울시립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표창 봉사부문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