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관리 방향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과도한 총량 규제가 아닌 적정선에서 부문별로 맞춤형 대책을 제시했다는 것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다.
다만 다중채무자에 대한 해법이 빠져있는 점과 고정금리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은 무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 가계부채, 규모보단 '질'이 문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021조3000억원으로 한 해동안 57조5000억원이 증가했다. 부채 규모만 사상 최대다.
가계부채는 우리나라 경제 회복세를 꺾는 대표적인 제약요인으로 꼽힌다. 빚이 늘어나면 가계가 소비를 줄이게 돼 결국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6월말 정부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통해 대출 억제 방침을 내세우며 규모를 줄이는 데 주력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가계부채 청문회도 열었다. 하지만 소득 증가 등 소비진작 여건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만 막다보니,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등의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총량 규제 방침에 따라 대출 증가세는 점차 잦아들고 있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전년말대비 6.0%를 기록했다. 2005~2009년에만 9.4% 수준이던 증가율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8.7%를 찍었고 대책 시행 후인 2012년에는 5.2%까지 낮아졌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율과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간 격차는 지난해 2.0%로 전년(2.2%)보다 축소됐다.
그러나 문제는 부채의 '질'에 있다. UBS와 HSBC 등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저소득층의 부채 증가가 내수 활성화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가계대출 가운데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보험, 여신전문기관 등을 합한 비은행권 대출은 481조8787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의 50.03%를 차지했다. 처음으로 비은행권 대출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이다. 비은행 대출은 은행에 비해 금리가 높은 데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받는다는 점에서 향후 부실이 우려된다.
게다가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다중채무자도 늘고 있다. 지난해 6월말 현재 다중채무자 대출규모는 307조7000억원으로 2011년 말 수준(307조5000억원)을 웃돌았다. 특히 자영업자 부채는 다중채무 비중이 2010년 26.1%에서 지난해 3월말 28.0%로 상승해 가계부채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인식된다.
정부와 한은 등이 분석한 결과 아직까지 가계대출이 국내 은행시스템의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정부는 내수기반 확대를 위해 소득대비 부채비율을 2017년 말까지 현재보다 5%포인트 하향 안정될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6월말 현재 가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7%로 전년 말(136%)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 이번 대책, 방향성엔 공감하나…이미 나온 대책 '우려먹기'
정부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변동금리ㆍ일시상환 방식에서 고정금리ㆍ비거치식 분할상환으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아울러 주택구입자금대출에 있어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한편 주택저당채권(MBS) 시장 활성화를 도모해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할 계획이다.
영세자영업자 지원과 2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관리도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의 방향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위적으로 가계부채 레벨을 낮추려고 하는 것보다 GDP 수준을 높임으로써 경제 성장 속도에 맞춰 안정적으로 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이번 대책이 주로 부채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측면에서 적절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과도한 규제로 정상적인 대출까지 막아버리면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적정 수준에서 부채비율을 관리하겠다는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기존의 대책을 조금씩 바꾼 수준인 데다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 연구위원은 "가계대출에서 부실 우려가 높은 다중채무자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또한 영세자영업자 대출 지원 부분도 지원대상을 확대하니 일단 늘긴 하겠지만 여전히 대출 기준 등 손볼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가계부채 대책은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신용을 통해 주택 구입을 권유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날 금융소비자원은 논평을 통해 "최근 10년간 변동금리 대출이 분명 유리했고,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급격한 금리 인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 확대는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거치기간이 끝나고 분할상환 시기가 도래한 대출자들의 상환부담의 어려움이나 분할상환금 납부 어려움으로 연체하는 가계대출에 대한 언급도 없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났다"고 꼬집었다.
이어 금소원은 "바꿔드림론 등은 과거와 크게 차별성이 없고 구체적 실행 대안도 없기 때문에 실행 효과가 의문시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