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응답하라! 유연석의 1994!

2014-01-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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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을 맡았던 유연석 [사진=이형석 기자]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신드롬'에 가깝다. 단순한 열풍으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아쉽다. 각종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94'(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이하 '응사')의 주역을 꼽으라면 단연 유연석일 테다. '희대의 매력녀' 성나정(고아라)를 사이에 둔 쓰레기(정우)와 줄다리기를 통해 극에 흥미를 더했다. 

지난 석달 동안 유연석은 한 시대(1990년대)를 풍미했던 엑스세대(X-세대)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분해 그들만의 사랑과 추억을 이야기했고 타임머신을 타고 간 1994년에 살면서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리고 어느새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유연석에게 1994년은 큰 의미를 지닌다. 1984년생 유연석이 열한살이 되던 해이기도 하고, 연기자의 꿈을 마음에 품었던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응사'는 지난 10년 무명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대표작이 됐다. 

국민학교로 입학했다가 초등학교로 졸업했던 세대, 머리에 피도 안 말랐는데 IMF라는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맞아냈던 세대, 삐삐라는 신문물로 받은 문화충격을 잊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세대. 유연석은 2000년 밀레니엄을 걱정과 환희 속에 맡이했던 엑스세대의 중심에 있던 아이였다.

"1994년이요? 초등학생이었어요. 아마 기억엔 그때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어요. 제 초등학교 시절.. 음..  오락부장도 했었고, 전교 부회장을 거쳐서 전교 회장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데 되게 적극적이었던 아이였던 것 같아요."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을 맡았던 유연석[사진=이형석 기자]

우연히 올랐던 학예회 무대에서 어떤 짜릿함을 느꼈다던 유연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기자라는 꿈을 키워왔다. 신기한 건,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는 것. 누구나 한번쯤은 또 다른 꿈을 꾸기도 하는 터라 지금까지 같은 꿈을 키워온 유연석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공부에 소홀한 학생은 아니었다. 전교 회장을 역임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는 당연했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의 꿈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동네방네 "나는 영화배우 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하니, 1994년 유연석의 동네는 꾀나 시끄러웠을 법하다.

"막연하게 꿈을 키워왔던 것 같아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 학생 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방송반 활동을 하는 거였죠. 하하. 연기자라는 꿈과 가장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연기요? 너무 좋아요. 음.. 생각해보면 제 주위에도 아직까지 꿈을 갖지 못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저는 꿈도 이뤘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기까지 하니까. 이것만큼 좋은게 또 어디있겠어요."

형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상경한 유연석. 낯설고 무서웠던 서울에서 보낸 지난 십 몇 년 동안 그는 한층 단단해졌다.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던 그의 1994년. 유연석에게 1994년은 꾀나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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