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들어 한국 경제가 다시 활화산처럼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르익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회복을 위해 총력체제로 돌입하고 있지만 민생경제는 뒷전인 채 정쟁만 일삼고 있는 '국회절벽'은 여전히 높다.
정치권 갈등 못지않게 사회 전반에서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세제·부동산 등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라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
◆정치·사회 갈등…경제적 손실 치명적
최근 한 연구소가 분석한 한국의 갈등지수는 수천년간 종교와 인종 갈등을 겪어온 터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갈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사회적 갈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적게는 연간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만 머물러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21%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소모적인 흐름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4월 말 국무조정실에 범정부적 갈등 관리를 지원·조정하기 위해 '갈등점검협의회'를 신설하고 69개 주요 갈등과제를 선별했다.
대표적으로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 태안반도 기름 유출 피해보상,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이 포함됐다. 또 담뱃값 인상, 군 가산점제 도입 등 특정 수요층이나 계층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과제도 대상이다.
이처럼 정부가 갈등과제까지 선별하며 관리에 나선 것은 갈등 해결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갈등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재원의 흐름이 막히면서 경기회복에 갈 길 바쁜 정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 정부 재정지원 의존도 낮춰야
한국의 사회적 갈등은 지나치게 정부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주도적 사업이 많아지면서 이를 수긍하지 못하는 이해당사자와 대립이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갈등점검협의회가 꼽은 주요 갈등문제도 태안 기름 유출사태 등 일부를 제외하고 정부 사업이나 제도가 대부분이다. 이는 정부 재정지원에만 의존해 지속 가능성의 부재를 야기시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일자리와 복지사업 역시 정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형성 중이다.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맞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정부의 우선순위가 처우개선보다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구성 의사를 밝힌 '국민대타협위원회' 역시 경제와 밀접한 세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초연금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복지제도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대선 때 공약했던 국민대타협위를 만들어서 국민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등으로 올해에만 20조원의 세수가 펑크 난 상황에서 복지를 위해서는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한 만큼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경기활성화를 1순위에 올려놓고 민생에 올인하는 박 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이 '갈등'이라는 암초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치·사회적 갈등이 한국 경제 회복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 같은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전반의 흐름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