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영 기자= 세계 경제 불황의 긴 터널 속에 국내 기업들의 상황이 외국과는 사뭇 다르다. 각국이 자국기업을 감싸고도는 반면, 국내 기업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중국은 세계 태양광 생존경쟁에서 보조금을 통해 노골적으로 자국기업을 편들고 있다. 미국은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환경문제가 불거진 셰일가스 개발 문제를 외면한다. 각국이 관세와 환율을 유리하게 조정해 보호무역을 행하는 것은 일반화되다시피 한다. 경제불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러한 보호무역주의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셈이다.
보호무역주의가 정당화될 순 없지만 국내에선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재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국내 정치권 압박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규제법안은 차치하고 경제활성화 법안도 7개월 넘게 국회 표류돼 위기극복을 위한 국회의 원격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국회가 정치싸움에 몰두하는 가운데 경제활성화 법안처리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법안 남발현상도 엿보인다.
기업들은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불황에도 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국회에선 화답이 없다. 2조3000억원의 외국인 합작투자가 걸린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한가지 예다. SK와 GS 등 관련 기업들은 현재 추진하는 해당 사업 외에도 해외 기업과 추가 합작투자를 검토하고 있어 사실상 이 법안에 걸린 투자금액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투자는 고용창출과 지역경제활성화 기대효과가 높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역시 수조원대 투자와 고용창출이 예상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관광호텔이 학습환경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차일피일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충분히 노출될 만한 규제”라며 “외자유치를 위해 당연히 개선돼야 할 규제인데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반대논리는 막연하다”고 지적했다.
재계 및 경제단체들은 또한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율을 미국과 영국 수준으로 낮추는 지방세법 개정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를 폐지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으론 기업 실정을 외면하는 규제 법안이 논란을 낳고 있다. 가장 논쟁이 뜨거운 것이 화학물질등록및평가법(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다. 화평법의 경우 화학물질 추가 등록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6개월의 등록절차로 인해 신제품 개발 경쟁에서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다. 화관법은 매출액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이 탁상행정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한 제조기업 관계자는 “영업이익조차 5%를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물리면 불가피한 사고 한번에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며 “기업을 하지 말란 소리”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기업 규제는 해외 국가들의 보호주의와 맞물려 국내 기업의 경쟁력약화 요인으로 부각된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경우 기업 인프라 지원과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지원정책으로 제조업 부활을 촉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로 나갔던 미국 기업들이 자국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이는 곧 고용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활성화법안을 비롯해 최근 예산안 처리도 지연되면서 국회가 국정업무를 망각하고 법안처리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나아지면서 회복세를 보이나 체감경기는 여전히 나쁘고 대내외 불확실 요인이 많다”며 “경제활성화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업의 경제위기 극복 노력에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연구원은 “국내 경제 환경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에 경제법안과 예산안 등이 연말 예정된 시기에 차질 없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