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워싱턴 한인사회 달군 ‘불판 논란’

2013-09-0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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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한울 워싱턴 특파원= 어릴 적 우리 형제들은 명절 때가 되면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계신 친척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러 다녀야 했다. 당시만 해도 도로가 포장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완행버스를 타고 달리는 시골길은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차 멀미 때문에 어지럽고 울렁거려도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 힘들었던 여정은 금새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그 날은 설날이었던 것 같다.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버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아저씨들 때문에 명절 귀향길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 얼른 방안으로 들어오라 하시며 아랫목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곧이어 방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화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로 숯불 위에 석쇠가 올라가고 할머니는 미리 어린 아이들이 먹기 좋을 만한 크기로 잘라 놓은 돼지고기를 올려 놓고 정성스럽게 구으셨다.

노릇하게 잘 익은 돼지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어주시는 할머니를 보며 우린 멀미를 잊었고 가족의 정과 함께 가슴에 사랑을 담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 크지 않았던 할머니 집의 화롯불은 단순히 고기를 구워먹기 위한 불판이 아닌 서로를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함께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불판에 고기를 구워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것 또한 서로를 알아가며 정을 나누는 중요한 시간과 공간이 됐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인 밀집지역에 있는 한식당에는 어김없이 불판이 있고 한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미 주류사회에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불고기와 갈비, 그리고 삼겹살을 먹기 위해 한인타운으로 몰려 들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한인 사회에 최근 느닷없이 불판 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워싱턴DC와 인접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소방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한국식당의 불판을 문제삼아 단속을 벌였고 일부 한인 식당은 적발되기도 했다.

적발 이유는 한인 식당이 식탁위에 내놓고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렌지 등 각종 형태의 불판이 소방당국이 정한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모두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십수년 간 아무말 없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불판을 새로 바꾸라니 그 막대한 교체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교체하지 않을 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하니 교포들 사이에서 한인을 겨냥한 차별정책이 아니냐는 볼 멘 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지역 한인회를 중심으로 항의 및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결국 페어팩스 카운티 당국은 공개설명회를 열어 "환기시설을 갖추면 휴대용 가스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통보해 왔다.

업주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분명 남아있다.

소방당국도 지적했지만 환기시설 없이 식탁에 휴대용 가스렌지를 올려 놓고 고기를 굽는 바람에 식당 안은 매케한 연기로 가득차고 불판 바로 위에 화재 시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쿨러가 없는 곳도 많은 게 현실이다.

아무리 한인식당이라 해도 미국이, 그리고 각 주와 시 단위 지방자치단체가 정해 놓은 법과 규정이 있다. 한류와 함께 한국 음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커지고 있는 지금, 그들이 마음편히 와서 불판에 고기를 구우며 ‘한국식’정을 나눌 수 있도록 업주들이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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