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더 이상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들이 강한 긴장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본보기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서는 10년여 만에 가장 큰 내부적 위기를 맞게 됐으며, 분위기 쇄신을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일 삼성그룹의 박 사장 경질 결정은 일본에서 귀국 후 지난달 30일 두 달여 만에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출근한 이 회장이 경영진들에게 “사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회장이 부재하는 동안 그룹 계열사 사업장에서는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화재가 발생해 직원들이 대피했고, 25일에는 화성사업장에서 암모니아로 추정되는 냄새를 맡은 직원 4명이 병원에 후송됐다. 화성 반도체 사업장은 올 초 1월과 3월 두 차례나 불산이 누출돼 총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여기에 26일 삼성정밀화학 폴리실리콘 공장 신축현장 물탱크 폭발 사고는 3명이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회장은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시 돼야 하는 공사 현장에서 초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희박해진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시공을 맡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인 박 사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사고 직후 삼성엔지니어링은 박 사장의 명의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사고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러한 노력은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려오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올 들어 성공에 제동이 걸리자 심각한 성장통 증세를 보이며 겪으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
“공기지연은 곧 죽음”이라는 회사가 강점으로 내세웠던 납기 준수를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짠물 경영이라 불리는 치밀한 원가 계산을 통한 경쟁력 있는 가격을 통해 수주에 성공했던 회사의 전략 또한 신규 진출한 비화공 부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공사 경험이 많은 화공 플랜트와 달리 아직 노하우가 부족한 비화공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갖가지 문제점에 봉착하며 필요 이상의 비용 지출이 수반됐다. 이를 모두 비용으로 처리한 결과 올 1, 2분기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재무 측면의 부진은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의식이 무너진다는 것은 건설·플랜트 업체로서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설·플랜트 업체 관계자는 “삼성정밀화학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피할 수 없지만 최대한 무사고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때 ‘그룹의 미운오리새끼’로 불렸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10년간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최근 수년간 해외사업에서 가장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계열사로 탈바꿈했다. 정연주 사장(현 삼성물산 부회장)에 이어 지난 2009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에 선임된 박 사장은 단일 기업으로는 연간 수주 1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경영 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의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동안 이뤄놓은 성과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신임 대표이사에 오른 박중흠 부사장은 지난 7월 삼성그룹의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경영진단이 끝난 후 운영총괄 부사장으로 선임된 지 한 달도 안돼 회사 경영을 맡게 됐다. 삼성중공업 출신인 박 부사장은 앞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이 보다 짜임새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는 삼성엔지니어링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 할 것임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