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해발 275m. 서울 남산(265m)보다 높은 산꼭대기에 미술관이 생겼다.
'힐링 미술관'을 꿈꾸며 한솔그룹(회장 조동길) 한솔문화재단이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내에 16일 개관한 한솔뮤지엄(관장 오광수)이다.
해운대 해변길이가 1.6km를 감안하면 긴 동선이지만 산 정상에 있어 파란하늘과 청량한 공기와 '그림같은 골프장'이 한눈에 보이는 별천지같은 미술관이다.
15일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다녀왔다. 광화문에서 출발, 1시간45분이 걸렸다. 오크밸리로 들어서자 평일인데도 곳곳에서 골프치는 사람들의 여유가 넘쳤다. 골프장 동선을 끼고 올라가자 '안도 스타일' 건물이 나타났다.
빛 물 돌등 자연적 소재를 사용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2006년 설계한 미술관은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 물의 사원등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특징이 한솔뮤지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게 한솔뮤지엄의 설명이다.
입구는 성곽처럼 보였다. 파주에서 가져왔다는 자연석을 쪼아 쌓아올린 건물 외관은 길이만 700m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 중 가장 큰 건축으로 알려졌다.
한솔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한솔뮤지엄 관장으로 부임한 오광수 관장은 "도시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보다 나은 삶은 제공하기위해 깊은산속에 세워진 한솔 뮤지엄은 치유의 공간으로써 미술관 특징을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지낸 미술평론가다.
'안도 스타일'의 안과밖이 연결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첫 관문인 웰컴센터가 나온다. 입장객을 맞이하고 대규모 세미나를 개최할수 있는 공간이다.
웰컴센터를 지나면 분홍빛 패랭이(80만본)꽃이 심어진 플라워가든의 15m 크기의 미국 조각가 마크 디 슈베르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붉은 색의 사람모양 형상은 바람 따라 양팔을 활짝 펴고 천천히 접히는 키네틱 조각으로 관람객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세워졌다.
꽃밭과 하얀 자작나무길을 따라가면 워터가든, 박물관, 미술관, 스톤가든, 제임스터렐관이 이어진다.
‘워터가든’은 뮤지엄 본관 주변을 물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잔잔한 물의 정원이다. 안도 건축의 특징이 극대화된 공간이다.
이 곳을 압도하는 건 알렉산더 리버만 작가의 Archway(1997). 타원형의 반복적인 형태로 이뤄진 붉은색의 거대한(12m)조각은 물위에 뜬 듯 시멘트건물과 어울려 카메라를 저절로 켜게 만든다.
미술관을 들어가기위한 대문역할을 하고 있는 이 조각은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소장품이다. 그동안 수장고에서 해체되어 있다가 이 미술관을 위해 설치됐다.
워터가든을 지나 건물에 들어서면 종이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와 국내 근현대 작품을 전시한 청조갤러리로 나눠진다.
◆한솔뮤지엄 개관전 '진실의 순간'..청조 이인희고문 소장품 100여점 전시
한솔뮤지엄 박물관 미술관 전시는 '진실의 순간'이라는 주제로 개관기념전을 마련했다.
페이퍼갤러리는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국보와 유물들이 전시됐다. 페이퍼갤러리의 전신인 한솔종이박물관은 1997년 국내최초 종이전문박물관으로 개관해 약 2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중정에 '파피루스 온실'부터 시작되는 박물관에는 고려 현종에서 선종에 걸쳐 간행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인 대방광불화엄경주본(국보 제277호)등 한솔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 책들을 만나볼수 있다.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 소장품으로 전시된 청초갤러리에 물방울작가 김창열의 작품이 걸려있다. 이 전시장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유리없이 전시됐다./사진=박현주기자 |
'청조갤러리'는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호를 따 만든 이 전시장은 모두 이 고문이 기증한 작품이다.
4개의 전시장으로 꾸며진 청조갤러리는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비롯해 국내 미술시장의 블루칩작가들인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도상봉 박서보 이우환의 작품은 물론 이쾌대, 최영림 오지호 박고석 최영림 권옥연등 국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회화·조각품 100여점이 전시됐다.
사진=박현주기자 |
미술관을 지나면 안도 다다오가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스톤가든’이 펼쳐진다. 거대한 돌 무덤처럼 융기한 원형탑사이에는 조각가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커플’,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인체’, 토니 스미스의 ‘윌리’, 베르나르 브네의 ‘부정형의 선’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졌다.
오크밸리 골프장이 한눈에 보이는 스톤가든. |
◆'빛의 예술' 마법부리는 제임스 터렐관
'제임스터렐관'으로 명명한 전시장은 한솔뮤지엄의 하이라이트다.
미국 출신의 대지예술가이자 라이트 아트(Light Art)의 선구자인 제임스 터렐이 이곳에 작품을 설치하러 왔다가 천혜의 자연경관에 반했다는 이 공간은 '빛의 예술'의 마법에 빠지게 한다.
‘제임스 터렐: 진실의 순간’이라는 주제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빛을 지각하는 방식과 효과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제임스 터렐의 세계 최고 품질의 작품이 설치됐다는 터렐관은 빛의 예술이 마술을 부린다./사진=박현주기자 |
안개속 혹은 구름속을 걷는것 같은 환영을 느끼게 하는 '겐지스필드(GANZFELD)’, ‘웨지워크(WEDGEWORK)’, 비행기안에서 구름위로 보이는 하늘 풍경을 보는 것같은‘호라이즌(HORIZON)’, 열린 천정에 나타난 실제 하늘이 일출 일몰의 시간에 따라 녹색 파랑색 보라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는‘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등 네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한솔뮤지엄 경영지원팀 권준성 팀장은 "오는 9월 구겐함임에서 회고전을 앞두고 있는 제임스터렐의 4개의 테마를 동시에 일반인에게 선보이는 것은 세계 최초"라며 "제임스터렐 스튜디오에서도 최고의 품질과 성능을 인정한 제임스터렐관은 앞으로 일출과 일몰을 함께할수 감상할수 있게 캠핑장처럼 꾸며 회원제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전시관을 보려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한솔뮤지엄은 "빠름에 지친 현대인들이 도시에서 한 걸음 벗어나 '느림'의 쉼표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수 있는 미술관이 되었으면 한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오크밸리 골프장과 리조트 회원들을 대상으로만 하는 미술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솔뮤지엄은 앞으로 2년마다 '페이퍼 비엔날레'도 열고, 3년마다 '조각축제'도 여는 프로젝트 미술관으로 차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림같은 미술관'으로 탄생한 이곳은 2005년 오크밸리 산악자전거장으로 활용되던 부지였다. 당시 현장설계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안도 다다오는 '생명의 숲'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2005년부터 준비한지 8년, '안도 건축'에 꽃하나, 돌멩이 하나하나에 한솔문화재단 직원들의 열정이 녹아있는 한솔뮤지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가치가 있는 미술관을 강원도에 선보이겠다는 야심을 이뤄냈다.
서울에서 두시간 남짓 거리에 '자연과 예술'을 품은 한솔뮤지엄이 '슬로우'의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미술관이 될지, 비싼 소장품이 전시된 기업 미술관으로 남을지 주목되고 있다. 미술관 입장료는 1만2000원. 제임스 터렐관까지 보려면 2만5000원.(033)730-9000.
워터가든에 대문역할처럼 설치된 한솔그룹 이인희명예회장의 소장품 알렉산더 리버만 작가의 조각을 관람객들이 통과하고 있다./시진=박현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