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서관은 지난 대선 때 강원 유세 수행 중 숨진 고(故) 이춘상 전 보좌관과 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과 함께 박 대통령이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들어올 때부터 15년간 줄곧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정책 파트를 줄곧 맡아왔던 그가 청와대 인사(人事)와 돈의 출납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총무비서관은 인사팀 재정팀 행정팀 구매팀 시설팀 위민팀 등 6개 팀을 총괄한다. 청와대 비서관실 중에서 총무비서관실의 인원은 72명으로 가장 많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역대 총무비서관 자리엔 늘 대통령이 신뢰하는 핵심 측근이 앉았다.
박 대통령의 눈빛만 봐도 의중을 읽어낼 정도로 두 사람 간에는 두터운 믿음이 형성돼 있다. 역대 정권에서 총무비서관은 대통령 퇴임 후 각종 정권 비리사건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권력의 결정체인 대통령실의 인사와 재무를 관장하는 만큼 각종 유혹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독대도 자주 하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청와대 안팎의 국사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정호성·안봉근 비서관과 함께 새 정부의 조각(組閣)·청와대 조직 개편 및 인원 축소 작업에 관여했다. 그에게 수없는 인사 민원이 쏟아졌지만, 이를 과감히 잘라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적잖은 마음 고생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박 대통령의 '철통 보안' 스타일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이들이 준비한 인사 자료들은 밖으로 절대 새나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이들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본인들에게 맡겨진 임무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내부 평가다.
이 비서관은 경기 화성 출신으로 서울 구로고와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6·7·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 예춘호 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의 아들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가 그의 스승이다.
역대 정권에서 반복돼온 '문고리 권력'의 폐해를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박근혜정부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점에서 그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