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운전자금 대출액은 8월말 현재 875조2000억원이다. 이는 올 1월 868조7000억원보다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증가율을 살펴보면 오히려 대출은 둔화하고 있다.
8월말 현재 운전자금 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2010년 9월 1.4% 이후 1년 11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운전자금 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12월 5.9%로 고점을 찍고 올 1월 5.5%로 축소된 후 △2월 4.5% △3월 3.9% △4월 3.3%로 꾸준히 내려앉아 5월 2.8%로 2%대에 진입했다. 6월 2.9%로 소폭 올랐으나 다시 7월 2.2%로 둔화했다.
반면 시설자금 대출은 일정 수준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8월말 시설자금 대출액은 214조5000억원으로 1월 197조9000억원보다 16조6000억원 증가했다. 1월 16.8%를 기록하던 전년동기대비 대출 증가율은 8월말 현재 16.0%로 소폭 줄었다. 그러나 올 들어 16%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수준이었다.
운전자금은 기업들이 임금이나 원재료 구입, 이자 지불 등에 쓰이는 경영 자금을 의미하며 단기(1년 이내)로 조달한다. 시설자금은 기계 등 설비투자에 사용되는 자금을 의미하며, 상환 기간이 5~10년 이내로 길다. 시설자금의 경우 담보물이 뚜렷하기 때문에 운전자금보다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적다.
이 통계는 결국 경기가 나빠지면서 은행들이 운전자금 대출을 꺼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운전자금 대출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10%를 웃돌았으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9년 4월 9.2%로 떨어진 이후 크게 하락해 5%대를 밑돌게 됐다.
실제로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도 은행들은 경기부진으로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지수가 상승하는 시기에 대출태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경기상황이 양호했던 시기인 2005~2007년에는 전년동기대비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분기말 평균)이 11.8%로 가계대출(8.8%) 및 대기업대출 증가율(4.0%)을 상회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중소기업대출 증가율은 2.0%로 가계대출(4.7%) 및 대기업대출 증가율(18.3%)을 크게 하회했다.
경기 둔화로 인해 현재 예금은행의 기업대출은 감소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달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8조9265억원으로 전월 대비 7818억원(0.37%) 감소했다.
대기업 대출도 9월보다 3384억원(0.46%) 줄어든 73조5942억원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저금리 기조로 발행 여건이 좋아진 기회를 틈타 은행대출 대신 직접금융인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추세다. 8월보다 9월 회사채 발행규모가 31.9%(1조2169억원) 증가했다는 금융감독원 통계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중소기업은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이 운전자금 대출마저 줄이는 것은 중소기업에게 악재로 작용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여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부자금지원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65.7%로 절반이 넘었다. 자금 목적으로는 '단기 운전자금'을 꼽은 기업이 48.3%로 가장 많았다.
IBK경제연구소의 김계엽 팀장은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수출 대기업의 경우, 수출 호황에 따른 잉여자본이 있어 자금 여력이 충분한 상황"이라면서 "반면 중소기업은 우량업체에 자금조달이 치우쳐 금리 면에서도 양극화가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이어 "9월 중소제조업 생산이 전월보다 다소 늘었으나 지난해와 비교하면 여전히 악화된 상황"이라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내년에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