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박병선 박사타계

2012-02-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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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국립묘지 안장 추진..국립중앙박물관에 빈소 설치

지난 6월 11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반환 관련 기자회견을 했던 고 박병선 박사.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22일(한국시간 23일)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향년 88세.

지난 8월 파리에서 수술을 받은 박 박사는 파리시내 15구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요양을 해오던 중이날 밤 10시40분(한국시간 23일 오전 6시40분)께 별세했다고 병원과 유족 측이 전했다.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해외 문화재 반환의 큰 별이 돌아가셨다”면서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박사는 먼지더미 속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였으며, 프랑스 내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등 해외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적 진실을 밝혀낸 선구적 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1972년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서 사서로 근무할 당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존재를 처음 발견, '직지 대모'로 유명하다. 1979년에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확인해 국내에 알림으로써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박 박사는 작년 1월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와 병인양요 관련 저술 준비작업을 계속해왔으며, 지난 6월에는 외규장각 귀환 환영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인 박 박사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박 박사는 유언으로 그동안 준비 작업을 해온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 2편’의 저술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일단 박 박사의 빈소를 주불한국문화원에 차린 뒤 유족 등과 장례절차를 논의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 박사가 1967년 발생한 동백림 사건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외규장각 도서 반환 등 국가적 공로가 큰 점을 인정,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선규 문화부 문화정책관은 "국립묘지에 안장되려면 1등급 훈장을 받아야 하지만, 박 박사는 2등급 훈장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그에 준하는 현저한 업적이 있으면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해 보훈처에 심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방 정책관은 "일부 언론에서는 박 박사가 유해를 프랑스에 뿌려달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최근에 직접 유가족과 함께 박 박사에게 직접 확인한 바로는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했다"면서 "국립묘지 납골당에 모실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크다"고 덧붙였다. 

국립묘지 안장이 확정되면, 고인의 유해는 현지에서의 장례 절차를 마친 뒤 한국으로 온다. 한편, 문화부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근처에 빈소를 마련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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