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한미 FTA 체결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업과 중소기업ㆍ소상공인을 대폭 지원키로 하는 등 민주당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음에도 ‘결사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미 FTA를 ‘불공정하고 나쁜 협정’으로 부각시켜 이를 추진하는 한나라당에 나쁜 이미지를 키워 내년 총선 정국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 의회가 한미 FTA 이행법안을 모두 통과시켰기 때문에 서둘러 국회 비준을 마쳐야한다. 야권의 반대가 심하면 단독상정도 불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으로선 한나라당이 단독상정을 시도할 경우 여당이 약속을 깼다며 몰아붙일 수 있다. 단독상정시 당연히 몸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민주당 입장에선 상정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한나라당)이 지난달 31일 여야 원내대표 간의 절충안 마련을 두고 “더 이상 물리적 충돌, 몸싸움, 이런 구태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미 FTA 문제를 몸싸움으로 몰아가려는 민주당의 속셈을 경계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한미 FTA 문제를 볼모로 내년도 예산안과 정국 운영에서 협상력을 갖는 한편 농어업인·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계층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복안이다.
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야권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이 강력히 반대하는 한미 FTA를 합의해줬다간 통합 논의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실제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만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절충안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지자 민노당이 강력 반발에 나서며 야5당 합동 의원총회가 깨지는 등 곤혹을 치렀다.
민주당 지도부로선 대안정당으로서 입지가 위축되고 있어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전날 비공개로 진행된 민주당 의총에서 야권 통합문제를 관장하는 이인영 최고위원이 “야권 통합 논의 과정이 진행 중인데 민주당이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한나라당에 협조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정치적 입지가 커지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한미 FTA 반대 목소리가 높아 민주당으로선 원내대표 간 절충안 서명을 번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외통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 간 절충안은 야권 공동의견은 물론 당론도 정하지 않고 결정한 사안”이라고 평가절하 한 뒤 “한미 FTA 문제는 야권 전체의 목소리가 중요해졌고, 당내에서도 체결에 강력히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