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이 회장이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을 폭로하면서 그 배경으로 지난 2009년 SLS조선에 대한 채권단의 워크아웃 개시 결정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SLS조선의 워크아웃으로 그룹이 공중분해됐고, 그룹을 살리기 위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권재진 법무부장관(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금감원은 그러나 SLS조선의 워크아웃을 결정한 채권금융기관들을 조사한 결과 이 회장의 주장과 달리 당시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법과 원
칙을 지켜 진행됐다고 결론 내렸다.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SLS조선은 산업은행(주채권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흥국생명 등 채권금융기관들의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2009년 상반기에 ‘B등급’을 받았다.
채권금융기관들은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원회 주도 아래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라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따져 A~D등급으로 매겼는데, 애초 SLS조선은 B등급으로 분류돼 워크아웃(C등급)이나 법정관리 및 퇴출(D등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자체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SLS조선의 몰락은 글로벌 조선경기의 침체, SLS그룹 내 불법행위, 파업과 대규모 분식회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SLS조선은 건조능력을 초과해 물량을 수주하고 자금을 끌어들였으나 그해 하반기 들어 선박 인도가 지연됐고, 이는 계약 취소로 이어졌다. 이는 선수환급금(RG) 4천300억원을 모기업인 SLS중공업(이듬해 1월 워크아웃)으로 빼돌리면서 건조자금이 부족해진 데다 노조의 파업이 겹친 결과라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2년 전 유상증자 대금으로 조달한 1천485억원 가운데 1천억원(1억달러)이 실제론 해외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드러나는 회계분식 사건까지 터지자 채권금융기관들은 대출연장을 거부하게 됐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난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이에 대한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의 질문에 “SLS조선 측은 대출금 연체 지속 등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하자 주채권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며 “이 회장이 산은을 찾아와 주식·경영권 포기 각서 등에 자필 서명하고 이사회 의사록도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산은은 12월10일 SLS조선의 워크아웃 신청서를 받고 신용위험평가를 다시 해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C등급으로 낮췄다. 결국 같은 달 24일 열린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SLS조선의 워크아웃은 채권단 98%의 높은 동의율 아래 통과됐다.
권 원장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달리 기촉법은 워크아웃 신청이 들어오면 상거래 유지와 부도 방지를 위해 신속하게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신청한 적도 없는데 SLS조선의 워크아웃이 개시됐다는 이 회장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설명이다. 아울러 ‘내우외환’에 시달린 SLS조선은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다기보다는 경제적 논리를 좇아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는 게 금감원의 견해다.
워크아웃 개시 이후 채권금융기관들이 횡포를 부려 선박 수십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해지해 그룹에 손실을 입혔다는 이 회장의 주장과 관련해서도 금감원은 “SLS조선이 실사기관(안진회계법인)과 공동으로 선박별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인도 날짜를 맞추지 못하거나 수익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 선박 20척에 대해 SLS조선이 직접 계약을 취소했으며, 나머지 선박 30척에 대해선 채권금융기관들이 오히려 2천470억원 규모의 제작금융을 지원해 현재 17척이 인도됐고 13척은 내년 5월까지 인도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금감원의 조사 결과는 그룹을 살리려고 이 회장이 정·관계 로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의혹의 근거를 뒤집는 것이어서 검찰 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내용이 새롭게 밝혀질 수 있으므로 검찰 수사까지 언급하기는 곤란하다”며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입장에서 당시 워크아웃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최대한 확인해 본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