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변방국에서 197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는 나라로 우뚝선 것도 다름아닌 경제주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풍에 흔들릴때 굳건히 나라경제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던 저력 때문이었다.
2011년 전세계를 엄습하고 있는 글로벌 재정위기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극복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26일 현 상황의 위중함을 반영해 월2회 열리던 '국민경제대책회의'를 1년여 만에 '비상경제대책회의'로 환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체적으로 위기감을 갖고 비상체제로 전환해 경제 상황을 점검해 운영하라”고 지시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전시행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가정책을 책임지고 운용하는 당국자들이 대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 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실물경제를 뒷받침해야 할 금융부문의 부실 처방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부채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금융권의 붕괴 위험은 월가를 비롯한 미 경제의 기반을 뒤흔들 기세다. 미첼 메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미국은 그리스에 대한 월가의 직접적인 익스포저(위험노출액)와 유럽 은행권이 판 파생상품의 손실위험, 시장 신뢰도 저하, 머니마켓펀드(MMF)와 관련한 자금 거래 리스크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의 기저에는 미국이 2년 전 경기침체 탈출을 선언했지만, 실물 경제는 나아진 게 없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특히 정책당국이 당장 욕먹는 것이 두려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을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금융팀장은 “금융위기 때 정부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고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유동성까지 늘리면서 결국 가계부채가 늘게 됐다”며 “2008년 말에 금리를 올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가계부채 문제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에 초연히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물가든, 가계부채든, 환율이든 우선 순위를 매겨 해결하고, 자본시장 개방의 규모를 얼마로 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