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9·11 10주년 우울한 미국

2011-09-1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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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송지영 특파원) 평소 알던 한 동네 미국인이 9·11 테러 10주년을 맞은 11일에 뉴욕이나 워싱턴DC에서 테러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국토안보부, 중앙정보국(CIA) 등이 발표한 구체적인 테러 혐의 경고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미국인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 들어본다. 테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다. 대테러 기관들의 경고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10주년을 맞은 9·11 때문일까. 미국인들의 근저에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 것 같다.

9·11은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일거에 바꾸어 버렸다. 남북전쟁 이후 150년이 넘도록 미국 대륙 본토에서 전쟁을 해보지 않았던 미국인들은 미국의 경제 중심지, 1000만명이 넘는 경제 인구가 오가는 뉴욕에서 초고층 빌딩 두 개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미국도 당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게다가 테러 집단들이 사용하는 각종 정교한 공격들은 미국인들의 일상 생활이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뉴욕, 워싱턴DC 등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 권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미국이 자랑하는 '멜팅포트(melting pot)'의 포용력도 줄었다. '이민의 나라' 아메리카가 이민자들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게다가 수년 전부터 불어닥친 극심한 경기침체는 사람들의 경제·정신적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예년 같으면 지나가는 경기 사이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마치 전시 체제에 불어닥친 경기 한파처럼 느껴진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자 칼럼에서 만일 9·11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미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질문을 던졌다. 우선 버락 오바마,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테러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단행의 여파로 부시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그것도 오바마가 큰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오바마는 지금 고전하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연방 공공 건물에 들어갈 때도 꼭 해야 하는 '심각한 수준'의 보안 체크도 없었을 것이다. 알카에다는 물론 다른 테러를 단행했었을 것이고 미국은 계속해서 이들의 추적하는 작전을 사용했겠지만, 9·11 테러로 모든 것이 일거에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외부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신흥 파워가 미국을 압박한다. 미국이 옛 로마, 영국 제국처럼 지는 해라는 지적은 벌써 있었지만, 9·11 테러로 그 지는 해의 우울함이 강력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밝고 화사했던 분위기의 미국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과연 그 최종 정착지가 어디일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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