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서울 도심의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화폐 가치가 높아지면서 자국보다 물가가 싼 한국으로의 쇼핑 러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현재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1336.99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37.48원 하락했지만 아직도 지난달 초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반면 같은 날 같은시간 원·위안 환율은 1위안당 164.83원으로 전일보다 0.12원 높아졌다.
◆원화 대비 엔·위안화 강세…유학비 부담 커져
40대 초반의 대기업 차장인 C씨는 자녀 유학비로 골머리가 아프다. 그는 1년 전 일본에 부인과 자녀 둘을 유학 보냈다. 그런데 지난달 이후 원·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유학비 송금 시기를 계속 미루고 있다. C씨는 "환율이 급등했다고 갑자기 학업을 중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무작정 송금을 늦출 수도 없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올해 상반기 유학·연수 경비 지급액이 22억50만 달러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2억2550만 달러 줄었다. 기러기 아빠들이 유학·연수 경비 송금을 미루거나 아예 유학 시기를 연기한 때문이다. 엔·위안화 환전을 늦추는 것은 물론 씀씀이도 줄었다. 유학을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유학 관련 업계의 이야기다.
반면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 수는 지난 2004년 말 1만7000여명에서 2007년 말 5만명을 넘어선 뒤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난해 말에는 8만7000여명에 달했다.
값싼 해외여행지로 서민들이 선호하던 중국 등 해외여행 포기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일·중 쇼핑객 인산인해…"상대적 박탈감 커져"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 관광명소들이 일본과 중국인 등 외국인 쇼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화장품점이 밀집한 서울 명동 상가나 재래시장 등도 외국인 쇼핑객들을 붙들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치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중국·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센텀시티점은 전통적인 백화점 비수기인 8월에 연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다. 대부분의 백화점 8월 매출 비중이 6~7%대로 연중 가장 낮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제주시는 최근 제주재래시장 5곳에 중국·일본어 통역 도우미를 배치하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은 외화수입면에서는 긍정적이지지만, 물가고로 시름을 앓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있다.
30대 주부 D씨는 "장바구니 물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등하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해외여행을 할 생각은 아예 접었다"면서 "일본인·중국인 관광객들을 볼 때는 부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환율 정책…서민 물가부담 키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중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평균 4.3%로 집계됐다.
해당 통계가 나오지 않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32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에스토니아(5.3%), 터키(5.1%)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이처럼 높은 데는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린 고환율 정책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는 곧 취약계층인 서민·중소기업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국의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최신호에 따르면 우리나라 빅맥 지수(The Big Mac Index)는 주요 37개국 가운데 22번째에 그쳤다.
한국에서 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 메뉴인 `빅맥'의 1개 가격(3700원)이 지난 25일 환율(1056원) 기준으로 3.5달러였다.
미국에서 빅맥 가격이 4.07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원화가 14%가량 저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빅맥지수가 낮을수록 달러화에 비해 해당 통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빅맥지수 역시 4.07이다. 빅맥지수를 기준으로 한 원화의 적정환율은 달러당 910원에 해당한다.
주요 조사대상국들 가운데 중국(2.27), 홍콩(1.94), 인도(1.89) 등의 빅맥지수가 가장 낮은 편이었으며, 노르웨이(8.31), 스위스(8.06), 스웨덴(7.64) 등이 가장 높았다.
빅맥지수는 전 세계에 점포를 둔 맥도날드의 빅맥 가격을 통해 각국 통화의 구매력과 환율 수준을 비교평가하기 위해 만든 지수로,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