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30여명의 한국선수와 청야니(22·대만) 얘기다.
미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주요 대만선수는 청야니, 캔디 쿵, 에이미 훙 등 3명 안팎이다. 그 반면 한국(계) 선수는 신지애(23·미래에셋)를 비롯 최나연(24·SK텔레콤) 박세리(34) 미셸 위(22·나이키골프) 등 30명을 훌쩍 넘는다. 숫자로만 보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수들이 미LPGA투어에서 뛰고 있다.
올해 성적은 어떤가. 한국은 투어 13개 대회에서 1승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것도 국내에서 활약하는 유소연(21·한화)이 US여자오픈에서 거둔 것이다. 그 반면 대만은 청야니 혼자 올들어서만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 4승을 올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선수들의 정신력이 느슨해졌다. 우리 선수들은 숫자가 많아지고, 서희경 유소연 등 국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마저 덥석 우승하는 판이어서 그런지 ‘한국=세계 1위’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듯하다. 한국말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고, 한 걸음 떼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으니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여지가 없다. 이는 정신력 약화와 자만감으로 나타났다.
한국선수들은 5년전만 해도 ‘연습벌레’로 통했다. 경기 외 남는 시간은 오로지 연습장에서 보내다시피했다. 연습장에 처음 가는 선수도, 연습장에서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선수도 한국선수였다. 외국선수들은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한국선수들이 지독한 연습을 통해 승수를 쌓아가자 자신들도 연습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니 연습량은 비슷해졌고, 우승 횟수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한국선수들은 ‘샷 거리’가 비교적 짧은 것도 결정적 요인이다. 청야니의 드라이버샷 평균거리는 270야드에 육박한다. 신지애보다 20야드 가량 더 나간다. 두 클럽 차이다. 특히 파5홀에서 청야니는 2온후 가볍게 버디를 노리지만, 한국선수 대부분은 3온후 어렵사리 버디를 잡는다. 한국선수들이 거리를 더 늘려야 하는 이유다.
한국선수들은 ‘골프가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골프 외에 다른 취미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그러다 보니 골프가 안되면 강박관념을 갖게 되고, 이는 스트레스로 작용해 슬럼프로 이어진다.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는 요리나 여행, 봉사활동 등으로 골프 외의 시간을 즐겼다. 그래서 골프도 즐겁게 친다. ‘골프는 잘 될 때도 있듯이 잘 안 될 때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죽기살기’로 골프에 매달린다. 골프는 ‘즐거운 게임’이 아니라 ‘전쟁’이다. 자연히 여유보다는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태에서 경기를 한다. 결과는 뻔하다.
한국선수들이 미LPGA투어에서 거둔 통산 99승은 놀랄만한 기록이다. 그러나 소렌스탐, 오초아, 청야니처럼 ‘여제’(女帝)라고 부를만한 걸출한 스타는 없다. ‘연습은 열심히 하되 골프 외 다른 것도 즐긴다’는 여유있는 자세로 임할 때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여제가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