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제5의 공급사로 석유공사를 석유유통시장에 진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유 4사의 독과점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에 석유수입시장을 개방하긴 했지만,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사실상 진입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간에서 수입하는 석유제품의 질이 국내 환경조건에 비해 뒤떨어져 판매자체가 어려운 점도 고려됐다.
◆정유사 과점체제 개선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다른 고유가 대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못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유통시장에 진출할 경우 분위기를 크게 반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국내 유통시장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정유 4사의 과점체제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명분이 크다. 특히 정유 4사로 공급사가 한정돼 있는 주유소는 석유공사가 새로운 공급사로 나섬에 따라 선택권이 넓어진다. 이로써 그간 흐지부지돼 왔던 석유혼합판매 등 다른 유가대책들도 활기를 띨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혼합판매 활성화 연구용역도 추진하고 있다”며 “석유공사의 시장 진입이 효과를 보려면 이 같은 기존 대책들과 연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그간 석유공사는 국정감사 때마다 정유사에 비싸게 비축유를 사와서 싸게 되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또 유전개발 외에는 이렇다 할 수익사업이 없는데, 이번 방안이 이런 부분을 해소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수입시 기름값 최소 50원 인하
석유공사의 진입형태에 따라서도 파급효과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업계는 석유공사가 단순히 도매업만 진출하기보다 수입사역할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석유공사가 석유제품을 수입해서 판매한다면 일반 관리비를 제외할 경우 정유사의 공장도가격보다 최소 리터당 80~120원 정도의 차이가 생길 것”이라며 “이로 인해 소비자 판매가격도 최소한 리터당 50원 이상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수입사역할을 병행할 때 만이다. 단순히 도매역할만 한다면 정유사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기름을 공급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 경우 오히려 기존 석유대리점들만 경쟁에서 밀려날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수입사들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는 석유 저장탱크들이 지방 곳곳에 있다”며 “석유수입을 하는 데 필요한 제반시설을 민간에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상거래와 시너지 기대
석유공사의 유통시장 진입으로 당장 효과를 보는 곳은 한국거래소다. 거래소는 올 연말을 목표로 고유가 대책 중 하나인 전자상거래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정유사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물량을 조달받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석유공사가 물량을 공급해주면 양측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석유공사가 도매업에 진출한다면 물량 운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석유공사가 굳이 제품 수입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 비축물량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내년부터 검토하기로 한 석유선물거래 시장에서도 석유공사는 중차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나친 시장개입은 우려
그러나 부작용도 우려된다. 대형 공기업이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 자유시장 논리를 역행한다는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 더욱이 석유공사가 수입사 역할까지 수행할 경우 공기업이 외국산 제품으로 국내산 제품을 견제한다는 문제가 비화될 수 있다.
정유업계는 석유공사의 시장진입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정유사 관계자는 “정부가 대형마트주유소처럼 석유공사가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마트주유소는 자체 수익성보다 마트 고객을 확보하는 미끼 상품이라 원가 수준에 팔 수 있는 것”이라며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석유공사의 진입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