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조용성특파원)1990년대 푸젠(福建)성에는 밀수, 밀항이 만연했다. 그러던 중 1999년 전 중국을 뒤짚어 흔든 위안화(遠華) 밀수사건이 터져나왔다. 중국인들은 경악했고, 당시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격노해 엄정한 조사와 엄격한 처벌을 지시했다.
주범은 진장(晉江)의 농민 출신인 라이창싱(賴昌星)이었다. 라이창싱은 위안화그룹(遠華集團)을 설립해 5년동안 밀수활동을 벌였다. 밀수품의 전체 금액은 조사된 것만 530억위안(한화 약 9조원)에 달했다. 탈세액은 300억 위안이었다. 국가에 끼친 손해는 무려 830억위안인 것.
중국 최고위층들도 연루설에 휘말렸다. 전 국무원 공안부장 타오쓰취(陶駟駒) 부부, 리펑(李鵬) 전 전인대위원장의 아들, 상무위원인 전국정치협상회의 자칭린(賈慶林) 주석의 부인 린요우팡(林幼芳),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사위 부주석 류화칭(劉華淸)의 딸 류차오잉(劉朝英)이 연계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이들의 연루여부는 확인되지 않은채 소문으로 잊혀졌다.
◆중국 최대의 밀수사건, 인생 최고의 기회
위안화사건은 수많은 관료들을 낙마시켰지만, 한 남자에게는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는 기회가 됐다. 당시 사건수사를 지휘했던 중앙 기율위원회 서기 웨이젠싱((尉健行) 은 철저한 조사를 위해 루잔궁(盧展工, 현재 허난(河南)성 서기)을 푸젠성 부서기직으로 급파한다. 루잔궁은 당시 중국총공회 부주석이었다. 그는 강직하고 청렴한 관료의 길을 걸어왔으며 특히 웨이젠싱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비교적 한직에 머물러있었으며, 퇴임수순을 밟을 것으로 여겨졌던 루잔궁은 중국 전 인민이 주목하는 가운데 위안화사건의 수습을 위해 푸젠성에 입성한다.
루잔궁이 부서기로 이동해 갈 때 당시 푸젠성 성장은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부주석이었다. 푸젠성에서 오래 일해 왔으며 태자당인 시진핑은 사태를 적당한 선에서 수습하려 했다. 루잔궁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철저한 수사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루잔궁은 시진핑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시진핑은 사건이 터진 1년후 저장성 부서기로 전임됐다.
루잔궁은 현지에서 상당히 엄격한 수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위안화사건은 황급하게 종료됐고, 당시 푸젠성에는 워낙 거물급들이 연루된 나머지 중앙에서 사건을 덮은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베이징 정가의 한 소식통은 “위안화사건의 진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루잔궁만은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며 이는 루잔궁에게 ‘전가의 보도’로 남겨졌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상급자의 갑작스런 사망
루잔궁은 2002년에는 푸젠성 성장대리, 2003년에는 성장에 올랐다. 당시 푸젠성 서기였던 쑹더푸(宋德福, 1946~2007)가 폐암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없게 되자 루잔궁은 2004년 푸젠성 서기직마저 손에 틀어쥐게 됐다. 이후 그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2004년 12월 성 서기로 정식 임명되기 직전 병문안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루잔궁에게 쑹더푸는 병상에서 “나는 푸젠성에 애틋한 감정이 있다. 병이 난 뒤 당신을 대리서기에 임명한 뒤 나는 손을 놓았고, 당신을 서기로 임명한 뒤 마음을 놓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 정치인 중 대표적인 무당파인사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후진타오(胡錦淘) 주석으로 대표되는 공청단파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으로 대표되는 상하이파로부터 거부감이 없다. 또한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고 인기가 좋은 것도 강점이다. 현재 중앙위원인 그는 내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해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장 출신, 헤이룽장에서 연마
1952년 5월 저장(浙江)성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을 헤이룽장성에서 보냈다. 문화대혁명 시절인 1969년 고교를 마치자마자 머나먼 헤이룽장성의 푸민(富民)공사라는 농장에 배치돼 중국의 가장 추운 북쪽에서 무려 13년을 살았다.
그는 “헤이룽장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형식주의에 물들지 않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인민을 위해 일하는 것을 가르쳐줬다. 만약 헤이룽장성의 13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향후 그를 푸젠성으로 보낸 웨이젠싱과 인연을 맺은 것도 헤이룽장성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관료는 보모다”
푸젠성 성장으로 일하던 2003년 루잔궁은 다른 지역보다 먼저 농촌주민 최저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 1월부터 시작해 2008년 마무리한 ‘육천(六千) 수리공정’도 대표적인 그의 업적이다. 육천공정이란 1000만 농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고 1000개의 저수지를 개보수하며 1000만 무(畝•1무는 대략 201.7평으로 한 마지기에 해당) 경작지의 관개시설을 확보하고 1000만㎥의 목재산지에 물을 대며 1000만 무의 토지유실을 막고 1000리의 하천을 정비한 것을 말한다.
그는 양안 관계의 개선이 푸젠성 경제발전의 관건이라고 보고 중국과 대만의 관계 개선에도 힘썼다. 푸젠성에 ‘해안 서안 경제구’를 만들어 대만 기업을 대거 유치해 창장(長江) 삼각주와 주장(珠江) 삼각주의 중간에 위치한 푸젠성을 또 하나의 경제견인차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실현에 옮겼다.
루잔궁은 푸젠성 서기시절 ‘관원은 보모와 같다’는 발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는 “여러분은 어떻게 자기집 보모를 선택할 때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는 화두를 꺼낸후 그는 “모두들 근면 성실하고 고생을 견뎌내고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을 택할 것이고, 주인의 재산을 현명하고 충실하게 관리할 사람을 고를 것”이라며 “관료 역시 마찬가지로 관료는 인민들의 충실한 보모가 돼야한다”고 자신의 관료상을 드러낸 것.
◆취임하자마자 에이즈환자를 찾다
2009년 11월30일 루잔궁이 허난성위원회 서기로 임명되자 그는 “허난은 전국적으로 명망있는 지방이며 허난을 흠모해온 지 오래다. 하지만 허난의 실정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어서 당중앙과 인민의 기대를 저버릴까 두렵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인 취임일성이었고, 허난지역의 매체들도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허난성 전체를 감동으로 밀어넣었다. 그가 첫 출근을 하던 날인 12월1일은 22회 세계에이즈의 날이었다. 허난성은 중국에서 에이즈의 지방으로 불릴정도로 에이즈환자가 많다. 하지만 허난성의 전임 고위관료들은 에이즈에 대한 언급을 꺼려했을 뿐만 아니라 허난성에 에이즈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숨겨왔다.
그는 부임 첫날 에이즈환자와 에이즈병동을 찾았다. 루잔궁은 정저우(鄭州) 기차역광장에서 펼쳐지던 에이즈의 날 행사를 둘러본 후 정저우 제6인민병원에 들러 에이즈환자와 병원관계자들을 위문했다. 루잔궁은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에이즈환자의 병실에 들어가 침상에 꽃을 놓아주고는 환자의 손을 꼭 쥔 채로 고향이 어디인지, 병에 걸린지는 얼마나 됐는지, 차도는 어떠한지를 진심어린 태도로 물어봤다.
환자는 눈에 이슬이 맺힐듯한 표정으로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20여일간의 치료를 받다보니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고 말했다. 이에 루잔궁은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것을 보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보니 진심으로 기쁩니다. 반드시 치료 프로그램을 충실히 지키고 에이즈를 이겨내겠다는 확신과 용기를 가지십시오“라고 말했다.
루잔궁은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치료일선에 계시는 여러분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놓여져 있습니다. 저는 허난성을 대표해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지역TV를 통해 이 광경은 그대로 전파됐고, 루잔공이 에이즈환자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다음날 지역매체들의 1면을 장식했다. 그는 일거에 허난성 인민들의 신뢰와 호감을 사게 됐다.
◆허난성 물류망 확충에 전력
허난성은 1억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GDP 전체규모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인당 평균 소득수준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낮다. 루잔궁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허난성에 새로운 물류개념을 도입했다. 식품업의 대부분 원료는 허난에서 나온 것이며 라면 원료 역시 허난성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루잔궁은 푸젠성에서의 경험을 살려 물류망을 확대해 내륙으로의 운송이나 동남아지역으로의 수출을 용이하게 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허난성 서기로 임명될 때 공산당 조직부는 루잔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분명하며 이론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중하고 사려깊으며 중앙의 결정에 부합되는 정책을 실행한다. 특히 지도자 경험이 풍부하고 패기가 있어 대세를 장악하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