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지주가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데 전제조건으로 여겨졌던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에 대해 정치권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지주도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수전 참여가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우리금융 민영화가 또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3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22명(민주당 강성종 의원 구속) 중 17명이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대형 은행의 우리금융 매각 입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국내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지주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지분 요건을 현행 95%에서 50%로 완화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산은지주 외에 우리금융 인수 의사를 밝힌 금융지주회사가 없어 사실상 산은지주 밀어주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시행령은 국회 동의 없이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개정할 수 있지만 국회 반대를 무릅쓰고 개정안 통과를 강행하기는 어렵다.
금융위는 14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을 벌일 예정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우선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시행령 개정은 강만수 회장을 위한 맞춤형 정책으로 절대 안 된다”며 “그 동안 정부가 우리금융 민영화를 뒷전으로 미뤘다가 이제 와서 강 회장에게 맞춰주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의 이성남 의원은 “금융지주회사법 내 시행령 조항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문어발식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것인데 입법 목적에 대한 고민 없이 우리금융 매각을 위해 시행령을 고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가 아군이라고 여기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대부분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정무위 한나라당 측 간사인 이성헌 의원은 “산은지주가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관치금융은 늘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조문환 의원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문을 열어 놓고 우리금융 인수 대상자를 고르겠다고 했지만 산은지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특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에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시행령 개정이 좌초되더라도 우리금융 매각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산은지주 고위 관계자는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으면 우리금융 지분 95%를 일괄 인수해야 하는데 현재 자금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모펀드(PEF)나 외국계 자본에 우리금융을 넘기는 방안을 제쳐 둔다면, 산은지주가 인수전에서 발을 뺄 경우 우리금융 민영화는 표류하게 될 공산이 크다.
김석동 위원장은 지난 10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금융을 사가는 쪽의 편의를 위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는데 마치 산은지주를 위한 것처럼 비쳐져 난처하다”며 최근의 곤혹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정치권은 현 정부 임기 내에 우리금융 매각을 완료하려는 과욕을 버리고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은 “우리금융은 일괄 매각보다 계열사를 쪼개 파는 분리매각이 적절하다”며 “민영화를 굳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