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공공공사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철학과 실천

2011-06-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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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체된 국민경제를 살리고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효과적인 정책수단은 공공공사다. 물론, 세부적인 시행 과정에서 시대와 사회상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사업의 결과도 달라진다. 필자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노동부와 주택부, 건설업체와 노조 등을 방문하며 오바마 정부가 공공공사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 철학과 실천 방법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기본 철학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공공사는 국민의 혈세를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건설업체와 근로자에 의해 가장 우수한 생산물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유사한 공사 실적을 성실히 수행한 건설업체를 선정하고 숙련근로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둘째, 공공공사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합리한 예산 절감에 의해 저가 자재의 투입이나 근로조건의 악화 또는 임금 삭감 등이 야기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과도한 저가낙찰을 막고 적정한 수준의 공사비를 지불하고자 한다.

셋째, 공공공사를 통해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중산층의 육성에 기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공사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 준다. 넷째, 예산이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발주 건수를 줄여서라도 위의 세 가지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훌륭한 철학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건설업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건설업은 수주생산방식에 의해 영위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수주생산방식에서는 입찰에 참가해 수주를 해야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기회가 주어진다. 또 수주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낮은 가격을 써내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저가 수주는 부실 자재, 비숙련 근로자, 불법체류자 투입, 무리한 공기단축, 산재 다발, 품질 저하, 유지관리비용 증가 등으로 이어져 위에서 제시한 기본 철학과 멀어지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이러한 기본 철학을 공공공사에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직종별임금(Prevailing wage)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공공발주자가 적용하는 공사원가 산정의 기준이자 건설업체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지역별 직종별 최저임금이다. 즉, 건설업자로 하여금 ‘제 값 받기’와 ‘제 값 주기’를 실천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위반하면 공공공사 입찰이 제한된다. 과도한 가격 경쟁의 폐해를 경험한 후 1931년 제정된 ‘데이비스-베이컨법(Davis-Bacon Act)이 그 모태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 제도의 효과는 적지 않다. 언뜻 보기에는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시장경제의 수주생산방식에 내재된 ‘제 살 깎기’의 악순환을 막아 건설업을 지켜준다. 둘째, 적정 노무비와 공사비를 확보하게 함으로써 고숙련 인력의 투입을 가능케 하고 원․하수급자 및 근로자 모두의 상생을 가능케 한다.

셋째, 임금을 근로자까지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임금체불을 막고 양호한 근로조건을 제공해 젊은 층 진입을 촉진하고 숙련기반을 강화시킨다. 넷째, 산업 안전 효과가 높아진다(재해 건수 50%, 사망건수 15%가 감소 추정). 다섯째, 건설업체의 가격경쟁을 억제함으로써 기술경쟁을 촉진시키고 시공능력을 향상시킨다. 여섯째, 임금 수준이 낮은 타 지역 업체의 덤핑입찰을 막고 공사가 수행되는 해당 지역 업체의 수주 기회 및 지역 근로자의 고용 기회를 확보해 준다. 일곱째, 하도급 구조의 역관계에도 불구하고 원수급자에 의한 노무비 삭감을 억제해 하수급자의 경영 여건을 조성해 준다. 여덟째, 건설 생산물의 품질이 높아지고 장기적인 생애주기비용(Life Cycle Cost)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의 친서민, 상생, 공정, 일자리, 지속가능성장 등에 대한 고민이 깊다. 하지만 코 앞의 성과보다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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