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의원의 리비아 비화(秘話)

2010-12-30 08:52
  • 글자크기 설정

빼곡한 메모지 들고 구슬땀 흘리는 이 의원에 카다피 감복(感服)

이상득 의원
(아주경제 김영배 기자) “형제간에도 소원한 경우가 있는데, 진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형제 인가요?”
“이상득 의원은 영향력 없는 사람 아닙니까?”
“이상득 의원이 우리가 제시한 대안을 차질 없이 추진할 만한 힘이 있을까요?”

종교법 위반 혐의로 리비아 정보당국에 체포돼 억류 중이던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와 농장주 전모씨의 석방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 건설업체 고위간부에게 리비아 고위층이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에 대해 물어온 질문이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아랍권에선 형제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아 가까운 형제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 리비아 고위층은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과 진정성을 확인하고서야 리비아 최고 지도자인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Gaddafi)와의 면담을 성사시킨 것이다.

급박하게 진행됐던 당시의 협상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한 관계자를 통해 들어봤다.

2010년 9월 29일(이하 한국시간) 두바이의 한 호텔. 전세기를 대절해 놓고 리비아 정부의 통보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대통령 특사)과 김종근 외교통상부 아주중동국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을 비롯한 한국 측 사절단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깊은 좌절에 빠졌다.

리비아 정부의 고위관리를 통해 추진했던 카다피 국가원수와의 직접 면담이 어렵다는 통보가 날라온 것이다.

7월 6일부터 13일까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지만 그럴듯한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아픈 추억이 이 의원을 더욱 힘들게 했다.

핫라인을 통해 급히 재접촉을 시도한 한국 사절단은 10월 1일 입국하라는 통보를 받고 천신만고 끝에 리비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군비행장을 통한 비상 입국이었다.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와의 면담은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415㎞, 비행기로 1시간여 거리인 시르테시(市)에 있는 한 천막 영접실에서 이뤄졌다. 시르테시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접실 소파는 마치 카다피 국가원수의 검소한 생활태도를 말해주듯 낡아 있었다. 그리고 카다피 국가원수는 베드윈 복장으로 한국 사절단을 맞이했다.

면담자는 이상득 의원과 김종근 국장, 그리고 서종욱 사장과 이권상 대우건설 시르테 합작법인 대표였다. 통역으로 주요르단 주정훈 서기관이 참석했고 리비아 측에선 알리딸락 리비아 시르테 지역 보안사령관이 배석했다.

이에 앞서 이상득 의원은 카다피 국가원수와의 면담을 위해 우리 측 사과문과 후속조치 내용을 빼곡하게 적고선 통역과의 시차 독해 연습까지 하면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카다피 국가원수는 이 의원이 빼곡하게 메모한 서류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설명하자 비로소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국 측의 성의 있는 해명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예상과 달리 선선하게 이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며 사진촬영까지 제안했다.

옆에 있던 서종욱 사장도 “지난 30년간 미국과 리비아 간의 관계악화 등 어떠한 악재에도 굴하지 않고 대우건설은 리비아 건설현장을 지켜왔다”고 거들었다. 서 사장은 1980~90년대 리비아에서 7년을 근무했던 리비아통이기도 하다.

20억달러 규모의 시공과 수주잔액이 있는 서 사장으로선 그야말로 ‘지옥 문턱에서 다시 천당으로 온 기분’이었다. 더욱이 카다피 국가원수의 차남과 공동 추진한 ‘대우트리폴리호텔’ 준공식(9월30일)마저 취소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형이자 75세로 고령인 이 의원이 메모지를 들고 장시간 설명하는 진정성에 카다피 국가원수가 감복한 것이다. 아랍권에서도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가 동양(東洋) 못지않게 철저한 편이다.

“친구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한국과 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빨리 열어 양국 간 기술협력과 인재양성에 협력하자. 한국이 너무 무관심 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밀어줬는데 고위층 방문이 없어 섭섭했다.”

마음을 연 카다피 국가원수는 속에 담아뒀던 얘기를 하나 둘 꺼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때 모로코와 알제리 수단은 국빈 방문했지만 리비아는 빼놓은 데 대한 섭섭함과 앙금이 카다피 국가원수의 가슴에 남았고, 결국 한국과 리비아 간에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불씨가 된 것이다.

당시 리비아는 대사급 관계를 경제대표부로 격하시켜 버렸고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또 한국 언론이 카다피 일가에 대해 부정적 보도를 한 것들이 리비아통인 한국인에 의해 세세하게 전달된 것도 카다피 국가원수의 반한감정을 키웠다는 후문이다.

뜻하지 않은 카다피 국가원수의 호의에 이상득 의원도 “우리가 잘못했고 담당자도 문책하겠다. 코란에는 용서가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행위라고 쓰여 있는데, 용서해 달라. 양국 정상이 서로 방문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키자”며 화답했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 카다피 국가원수는 바로 수도 트리폴리에 머물던 국무총리를 불러 이상득 의원과 세부 면담도 주선했다.

“리비아와 갈등관계였던 영국과 수단, 불가리아 등은 6개월에서 2년이 지나야 문제가 해결됐다. 사건발생 4개월 만에 사건이 종결된 것은 기적이다.”카다피 국가원수 최측근의 의미있는 평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