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채권단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을 할 수 없게 됐다면 예비협상대상자를 고려하는 것이 순서”라며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는데 걸림돌은 사실상 사라진 형국이다. 무엇보다 채권단의 의지가 분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안내서에도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가 상실될 경우 예비협상대상자에게 새로운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내용이 규정돼 있어 머뭇거릴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채권단이 현대그룹과의 MOU 해지 결심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백지화를 전제로 보면 현대그룹의 소송은 어차피 예정돼 있는 것이고, 여론의 뭇매도 이미 맞을만큼 맞은 상황에서, 시기가 늦추다 보면 현대차그룹의 소송까지 감당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이 지난 달 입찰제안서에 인수대금으로 5조1000억원을 써 냈기 때문에,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에 매각을 해도 4조2500억원 가량의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현대그룹이 인수자금을 내부에서 조달할 방침이어서 자금출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 반갑다. 또 현대차그룹과 신속하게 협상을 마무리 짓게 되면 8500억원의 공적자금 회수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이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이다. 현대건설 노동조합은 20일 예비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신속하게 매각 작업을 진행해달라고 채권단에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건설 노조는 20일 성명에서 “현대건설 임직원의 95%가 선호하는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자로 선정하고 힘차게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현대차그룹의 조속한 인수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인수대상 기업의 노조가 이례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향후 현대차그룹의 인수 후 경영안정화가 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만들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매각의 차기 우선협상대상자로 부상하면서 현대건설의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이날 현대그룹컨소시엄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건설 인수대금을 지급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깜짝 발표를 했다. 차입금 규모를 줄여 승자의 저주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현대그룹이 나티시스 은행을 통해 조달하기로 한 1조2000억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기존 주장의 허점을 자인한 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막바지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며 “대출확인서에서 요건을 완화한 텀시트조차 제출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유상증자를 언급한 것은 기존 논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측은 현대그룹의 유상증자 계획과는 상관없이 MOU해지 의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MOU 해지 등 주주협의회에 상정된 안건 의결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 17일 주주협의회에 △현대그룹과 맺은 현대건설 매매 양해각서(MOU) 해지안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동의안(거부여부) △이행보증금 2755억원 반환 여부 운영위원회 위임 △현대차그룹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부여 여부 차후 주주협의회서 결정 등 4가지 안건을 서면동의 방식으로 주주협의회(8개 금융회사)에 상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