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추억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아련함’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머리에 남아 있는 뚜렷함은 적지만, 어렴풋한 그림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리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미․일 합작 글로벌 프로젝트란 거창한 이름이 그 시절 절절함을 다시금 그려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시사회를 찾았다. 흔히 리메이크를 ‘양날의 검’에 비유한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글쎄 텍스트로 옮기기에는 적절치 않아 넘어가겠다.
기자의 ‘기우’는 “역시나”란 단어로 시작됐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오글거림’으로 관객들의 닭살을 자극했다. 만난 지 5분도 안된 생면부지의 남녀가 주고받는 사랑의 대화는 요즘 관점으로 볼 때 생경하다 못해 ‘이해불가’ 수준의 그것을 그렸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송승헌과 일본 드라마의 ‘시청률 여왕’으로 불리는 마츠시마 나나코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이시떼루’(사랑해)만을 외치며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이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영화의 태생 자체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기에 ‘닭살’과 ‘오글거림’을 빼놓는다면 존재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거슬리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작의 최고 명장면인 ‘도자기 신’을 두고 제작진은 송승헌을 굳이 도예가로 설정하면서까지 리메이크로 살리는 초강수를 띄운다. 여기까지도 좋다. 관객의 기대를 위해 굳이 ‘언 체인드 멜로디’까지 삽입해야 했을까. 감동보단 실소를 넘어 폭소를 의도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노래 사용료가 문제였는지 일본 가수의 어설픈 발음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네 고속도로 메들리가 생각났는지 극장 이곳저곳서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가 절로 났다.
그나마 볼거리로 추천하자면 나나코의 비명소리에 신나게 터지는 불꽃쇼와 최첨단 CG(?)로 탄생한 저승사자의 출연 정도.
21세기 첨단 IT 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19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의 영화 한편이 반갑기는 하다. 하지만 자극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 20년 전 그 당시 감동을 요구하는 것은 상업영화로서의 직무 유기다. 일본 제작진의 솜씨라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고자 한다.
한국 배우와 일본 제작진에 미국의 원작이 결합된 정체 불명의 이 물건. 미안하지만 이 한마디로 끝내고 싶다.
“극장도 많고 볼만한 영화도 많다.”
kimjb5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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