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모든 것을 뒤집어 봐라"

2010-10-28 19:51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기자) "모든 것의 양면(兩面)을 보고, 뒤집어 보고 돌려보는 게 중요합니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8일 "이미 다 '증명된' 얘기 가운데 사실이 아닌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다면적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책 출간에 맞춰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장 교수는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첫 번째 책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었다"면서 "개발도상국 문제에 초점을 맞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낸 뒤 선진국 문제까지 포함된 더 광범위한 얘기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권유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경제학이라는 게 결코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번 책 내용 중 95%가 상식적인 이야기에요. 방역학 전문가가 아니어도 식당이나 음식 만드는 공장에 위생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경제학 박사학위가 없어도, 파생상품이 복잡하고 위험도가 높다면 규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할 겁니다."
   
장 교수는 또 "철통같이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자세히 보기 시작하면 모래성 같은 것일 때가 있다"면서 "'언론에서, 또 유명 교수가 그렇게 말하니 맞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며 비판적 시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복지병(病)' 하면 흔히 영국 얘기를 하는데 영국이 복지병에 걸렸다는 1960년대 경제성장률이 지난 20년 간 경제성장률보다 오히려 높았습니다. 금융위기 직전에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 사겠다고 난리쳤는데 샀으면 망했을 겁니다. 또 지금 막연히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와서 승산이 없고 금융을 키워 탈산업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민이 나서서 말려야 합니다."

대표적인 반(反)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장 교수는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 부자 감세, 미소금융 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장 교수는 "기본적으로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자유무역하면 득이 더 많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수준 차가 나는 나라들이 자유무역을 하면 장기적으로 후진국에 손해"라고 지적했다.

"5등 하는 학생을 1등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반에 넣으면 자극을 받아서 1등을 할 수도 있겠지만 15등 하는 학생은 너무 어려워서 오히려 성적이 더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15등 하는 학생에 가까워요. 제조업 생산성이 미국 등 선진국의 40% 수준밖에 안 되는데 FTA를 하면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과거 소련이 농촌의 잉여물을 한데 끌어모아 제조업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 집단농장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것처럼 "감세 정책 역시 투자할 사람들한테 돈을 몰아줘서 파이를 키워야 누구든지 더 큰 조각을 먹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지만 감세 정책을 쓴 뒤 오히려 투자와 성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내달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장 교수는 "선진국 모임인 G7에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개도국까지 포함시킨 것은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요한 결정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이뤄진다"면서 "G20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의 이해는 또 누가 대변해주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통일 비용이 특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독일이 지금도 구 동독 지역에 GDP의 5%를 지원하고 있는데 한국이 남북한의 생활수준을 비슷하게 맞추려면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는 써야 할 것"이라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한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해진 뒤에 통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정치적 여건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지난달 초 영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이번 달 독일어판과 한국어판이 나왔으며, 네덜란드, 대만, 일본, 러시아, 태국 등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등 23가지 이야기를 통해 '시장경제의 신화'를 비판한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주의 경제학을 설교하던 미국과 영국 등이 신뢰를 많이 잃었지만 그런 논리를 갖고 다른 나라를 윽박지르던 사람들이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어 모든 게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최근 금융개혁을 강화한 것 등을 사례로 들며 "서서히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장 교수는 이날 헌법재판소가 불온서적 소지 등을 금지하는 군인복무규율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에 "군이 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책 판매에는 덕을 봤다"고 농담을 던진 뒤 "군에서 금지해도 사회에 나오면 얼마든지 책을 사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시대에 안 맞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news@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