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7월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 21 컨퍼런스' 개막연설에서 한 말이다.
칸 총재의 말처럼 지난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전세계 금융ㆍ경제의 패권은 서구 선진국에서 아시아로 전이되고 있다.
기존의 서구 선진국들이 한때 전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석권했던 '소니'라면, 아시아는 해당 업계에서 새 챔피언 벨트를 두른 '삼성전자'에 비유된다.
이같은 흐름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서 의결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다양한 규제안은 지난 150년 간 서구 선진국의 성장을 이끈 금융산업에 족쇄를 채우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한ㆍ중ㆍ일 등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시장에서도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물경제의 탄탄함과 가파른 성장세도 이같은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아주경제는 2회에 걸쳐 아시아 금융산업의 현황과 가능성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성장 전망과 문제점에 대해 파악해본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그동안 세계 및 개별 국가의 경제를 보는 관점은 '서구-비서구'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미국ㆍ유럽 등은 부유하고, 경제시스템이 고도화한 데다 선진화된 금융산업을 갖췄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아시아를 포함한 여타 지역은 빈곤과 시스템적 후진성, 자본 부재, 정치적 불안이라는 부정적 배경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1950~60년대 이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압축성장에 성공했고, 단단한 실물경제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서는 △서구 선진국 경제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는 인식과 △아시아 경제가 양적ㆍ질적인 부분에서 모두 성장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열등감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금융산업에서 서구 선진국들의 문제 노출은 아시아 금융산업 성장과 세계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키웠다.
◇ 아시아 금융의 급격한 성장과 가능성
아시아 금융시장은 수요자와 공급자, 양 측면에서 모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금융파생상품 거래규모는 올 상반기 전체의 38%를 차지하며 북미 지역의 33%를 넘어섰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아ㆍ태지역은 410억 달러(올 4월 말 기준)를 기록하며 전세계 610억 달러의 63%를 차지했다.
금융 공급자로서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매년 10% 가량의 경제성장률을 기초로 빠르게 크고 있는 중국의 성장이 놀랍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빅3는 중국의 궁상(工商)은행(1753억 달러), 젠서(建說)은행(1287억 달러), 중궈(中國)은행(1128억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4위는 JP모건이 차지했으나 시가총액이 945억 달러로 궁상은행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중국은 자오퉁은행(10위), 자오상은행(12위)을 포함해 상위 20위 내에 총 5개의 은행을 올렸다. 지난 1999년 조사에서 중국 은행들은 20위 내에 단 한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에는 미국의 씨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1,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미쓰비시UFJ도 인수ㆍ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성공하며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과 일본의 은행들은 미국 리먼브라더스, 유나이티드 커머셜뱅크, 모건스탠리, 씨티은행 등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사업국을 사들여 시스템 선진화는 물론 해외 진출도 꾀하고 있다.
제프르 가튼 미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뉴욕과 런던으로 대변되는 '나일론(NyLon)'이 위력을 잃고 상하이와 홍콩으로 상징되는 '상콩(ShangKong)'이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낙관적인 것은 아시아 금융시장이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 성장을 배제한 서구 선진국들의 '금융을 위한 금융'에서 비롯된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현상이다.
시중은행의 한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금융이 너무 고도화되다 보니 금융이 본연의 목적과는 다르게 돌아갔다"며 "아시아 금융시장은 견조한 실물의 성장이 뒷받침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아시아의 금융시장 발전은 실물경제의 발전과 금융규제에 따른 서구 선진국 경제규모의 감소라는 반사이익을 통해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김성민 한국은행 G20업무단 단장은 "G20 회의를 계기로 금융회사, 특히 대형 금융기관들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며 전 세계적으로 금융이 실물을 지원하는 본원적 의미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실물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아시아의 경우 개별 은행의 사이즈가 확대되는 등 금융시장의 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