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작가 "이제 복어를 떠나 보낸다"

2010-10-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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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게 된 순간부터, 이 소설을 쓰게 되기를 기다려왔다. 나로서는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작가의 말' 중)

등단 15년째를 맞은 소설가 조경란(41) 씨는 다섯 번째 장편소설 '복어'(문학동네 펴냄)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운명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어떤 이야기이기에 작가는 처음부터 품었던 이 소설을 이제야 꺼낼 수 있었을까.
   
광화문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작가는 "요리도 와인도 좋아서 배웠다가 소설에 쓴 적이 있다. 커피도 배우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복어는 달랐다. "복어는 이번 소설 때문에 배웠다. 복어를 즐기기 어려운 개인적인 히스토리가 있다"고 했다.
   
'복어'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는 조각가 여자와 우연히 만난 그녀를 죽음에서 건져내려고 애쓰는 건축가 남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완벽한 죽음을 위해 복어를 배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은 집안 내력이었다. 그녀의 친할머니는 아홉 살 난 아들, 즉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독이 든 복엇국을 마시고 자살했다.

   
작가는 "죽으려고 하는 한 여자와 그녀를 살리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며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한사코 이를 밀어내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 속 할머니의 죽음 이후 여자의 집안에서 복어는 입 밖에 꺼내기 힘든 단어였다. 작가에게도 그랬다. 작가가 복어를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복어'가 작가가 언젠가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인 이유는 여기 있었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친할머니는 손수 끓인 복엇국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친할머니와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작가는 소설가가 됐고, 고통스러운 가정사를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작가가 된 순간부터 쓰고 싶었지만 빨리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음이 뭔지 이해에 가까운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쓰면서 가장 힘들었고 오래 걸린 작품이다. 작가로서 절망적인 순간이 자주 찾아왔고, 고독한 질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렸을 때는 떨치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작가가 되고 나서는 나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 원천일 수 있다고, 운명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 남녀에게 복어는 죽음이자 삶을 의미한다. 복어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서로 살릴 수 있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도 이제 다른 마음으로 복어를 바라보고자 했다.

"이제 복어를 떠나 보내야죠.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둥글지만 너무 딱딱해진 그것을 흘려보낼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래야 다른 것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복어를 본다면 씩 웃으면서 잘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친할머니도 그러길 원하지 않으실까요."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였던 '복어'는 작가에게 전환점이 될만한 작품이 될 듯하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더 고된 작업도 할 수 있을 맷집이 생긴 기분"이라며 "'복어' 이후에 어딘가 다른 작가가 됐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더 신중히, 시간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미 다음 작품들을 준비 중이다. 내년 1월께 "맛있는 음식을 싸서 소풍 가는 기분으로 쓰는" 두 번째 산문집을 낼 예정이고, 그 후에는 '복어'보다 더 무거울지도 모르는 소설을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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