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中伏)도 지났다. 지겹던 장마도 이제 끝물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지금 여름의 한가운데 멈춰선 느낌이다. 도심은 벌써부터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족휴가의 경우 1회 평균 67만1000원으로 개별 1인당 평균 지출은 24만 원이라고 한다. 전 국민의 46.1%가 여름휴가를 떠난다면 약 2조 8000억 원을 지출하게 된다. 시·도별 휴가여행 목적지로는 강원도가 33.4%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경남 13.2%, 경북 11.5%, 전남 11.1%, 충남7.9% 순으로 뒤를 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산과 바다로, 계곡으로 몰리다 보니 매년 그래왔듯이 또 치열한 여름휴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낭만과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썩 그렇지 못하다. 요즘 말로 ‘집 나가면 X고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일단 떠나고 보자는 일상 탈출의 욕구가 앞선다. 도로는 온통 주차장이다. 고생고생해서 피서지에 도착하면 또 어떤가? 숙박요금부터 온갖 생필품들이 바가지요금이다. ‘단대목 한철’이라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과 계곡, 고성방가와 추태, 대부분의 피서지는 가족과 함께 보내기에는 낯 뜨거울 정도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여름휴가는 평등으로부터의 탈출이다’라는 글을 통해 “원래 피서의 근본 목적은 더 나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휴식과 새로운 재충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몰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 가서 책이나 읽으며, 사색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여름휴가 목적과는 철저히 동 털어진 이야기다”라며 “오히려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최소한 50만, 100만 인파가 모인 곳으로 가야 우리는 제대로 여름휴가를 즐겼다고 자랑한다. 사람과 차량에 치이고 짜증과 불편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름휴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안가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떠나야 하는 여름휴가. 우리는 여름휴가를 휴식이 아니라 1년에 한 번은 치러야하는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의 과소비도 문제다. 피서지에서는 최소한 레테르가 붙은 패션을 입어줘야 한다는 그릇된 문화에 통 커진 씀씀이는 평범한 가장들을 주눅 들게 한다.
문란한 성문화도 문제다. ‘순간의 쾌락에 버림받는 바캉스 베이비’라는 생명경시의 저급한 표현들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한 번의 일탈이 몸과 마음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면 과연 여름휴가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피임연구회의 지난해 조사결과 여성들의 부인과 처방건수가 7월과 8월에 각각 25%, 23.5%로 평소에 비해 1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여름휴가 이후 낙태에 관한 문의전화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여름휴가가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탈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서지가 일부 젊은이들의 해방구는 더더욱 아니다.
이제 여름휴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002한일월드컵 붉은악마들의 응원과 함께 우리의 길거리 응원이 세계에 내놔도 전혀 손색없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축제 문화가 됐듯이 여름휴가도 한국적 문화로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먼저’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또,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솔선수범해 7, 8월에 몰린 휴가를 연중 이용할 수 있도록 분산시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다양한 여름휴가 프로그램과 휴가지 개발, 지역 특색에 맞는 축제를 개최해 여름 휴가객의 분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대답들이 수십 년째 답습되고 있는 묵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지금도 실행되고 있지만 여름휴가 전쟁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이번만은 쌓인 피로를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하게 일상 업무에 복귀하는 보람찬 여름휴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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