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제품에 다양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데 치중했던 연구개발(R&D)팀은 최근 '크리에티브디렉터'를 기용하며 신제품의 기능에 걸맞은 새로운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디자이너에게 과도한 자유를 줄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제품을 개발하는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디자이너의 무한한 상상력에 현실적인 고삐를 매어 줄 때 비로소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는 최근 오는 8월 출간 예정인 제이 그린의 '디자인하는 법(Design Is How It Works)'을 통해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LEGO)가 실패를 딛고 브랜드를 되살린 일화를 소개하며 제한된 조건에서 탄생한 디자인이 혁신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레고의 대표적인 장난감 '레고블록'은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디자인 아이디어로 꼽힌다. 레고는 블록이라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놀이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잘 나가던 레고는 2002년 '갈리도르(Galidor)'라는 캐릭터 장난감을 선보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갈리도르가 경쟁사의 제품과 비교해 눈에 띌 만한 경쟁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레고는 이 제품을 이용한 아동용 TV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는 열의를 보였지만 프로그램은 주목받지 못한 채 두 시즌만에 막을 내렸다.
그 사이 레고의 핵심 사업 부문인 레고블록의 입지마저 흔들리게 되는 등 '갈리도르 재앙'은 회사 전체로 확산됐다.
그린은 당시 레고 경영진이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제품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디자인팀에 제품 개발에 대한 전권을 부여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지적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 디자이너들은 일곱가지 무지개 색의 벽돌블럭부터 헬멧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쏟아냈다. 그 결과 레고의 장난감 모델은 1997년 7000개에서 2004년 1만2400개로 크게 늘었고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매즈 니퍼 레고 부사장은 "완전한 실패였다"며 "인기를 모았던 '레고시티'의 수요마저 줄면서 매출이 모두 증발해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던 레고시티의 매출은 1999년 13%에서 2004년 3%로 떨어졌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레고를 되살리는 원동력이 됐다. 단순함을 강조하는 레고 특유의 디자인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디자이너가 아닌 고객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팀의 권한도 대폭 축소됐다. 개인별 아이디어를 모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가 동의하는 디자인에 한해 제품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디자인을 결정할 때도 디자인팀과 관련 팀이 머리를 맞대게 했다.
마케팅팀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어린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디자인을, 개발팀과의 협업으로 목표 비용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디자인을 개발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레고는 재기에 성공했고 레고 제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재부상한 레고시티의 매출 비중은 2008년 20%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