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의 졸업식은 그 어느 대학보다도 소란스럽고 독특하다. 역대 학생 대표들은 졸업식에서 모두 단상에 올라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쏟아낸다.
한 학생회장이 졸업식 연설에서 대학의 정책과 영국의 외교정책을 싸잡아 비판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닌 대학이 가난한 학생을 돌보지 않는다며 악덕 기업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외국에 군대를 파견한 영국 수상을 살인마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 대학 총장이 학생회장의 연설을 듣고 난 이후의 반응이 매우 이례적이었다. 욕을 한 바가지나 뒤짚어 쓴 직후여서 기분이 크게 상할 법도한데, 총장은 오히려 연설을 한 학생의 총명함을 치켜세우며 치사를 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형식적인 법 뿐만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권리로 인식되고 그것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학풍에서는 대학 총장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공개 비판을 칭찬으로 되돌려 주는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런 큰 아량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듯 싶다.
요즘 한국은 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원 출신의 한 민간기업 대표가 2008년 6월께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인 미국 유학생이 만든 이명박 대통령의 과오를 풍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사건의 몸통을 놓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이 들끓고 있지만, 이 파문의 과정을 단순하게 들여다보면 한 평범한 국민이 현직 대통령을 비판한 것에 대해 누군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벌을 준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법사찰의 피해자가 멀쩡하게 다니던 은행 하청업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일본으로 도피까지 해야 할 정도로 한 개인의 일상을 치명적으로 훼손했다. 죄명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이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그냥 블로그에 올려 놓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피해자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행인들에게 그 동영상을 보여줬다면 과연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문득 총칼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인권을 유린했던 제5공화국처럼 공권력이 무섭게 느껴지는 세상에 다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수많은 이들이 값진 피를 흘린 대가로 쟁취한 인권과 자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조여온다.
개인의 신념조차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는 자유에 익숙해진 국민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대결구도가 가져올 결과는 불보듯 훤하다.
굳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향해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아량을 베푸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지 궁금해진다.
shiwall@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